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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입은 하얀 천사들-54-2군사령부 시절/2006.12.18
<509>군복입은 하얀 천사들-54-2군사령부 시절

개인적으로 2군사령부 시절 뜻있는 일을 하나 남겼다. 내가 졸업한 고향 학교 교사(校舍)를 짓는 데 기여한 것이다.

내가 나온 장성 월평국민학교(초등학교)는 6·25전쟁으로 교사가 모두 소실돼 전교생이 천막에서 2부제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학교 재건을 도와달라는 교육청의 요청을 받고 미8군 고문관에게 부탁해 뜻을 이뤘다. 당시 장성군 교육장은 국민학교 동창생이었다. 동문 가운데 장성이 된 사람이 있어 찾아가 도움을 청했으나 소식이 없어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이 일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나을 테니, 힘 좀 써 줘야 쓰겠어.”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안 될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알아 보마”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미8군 고문관을 찾아갔다.

주한미군에서는 그때 ‘에이펙 사업’이라 하여 대민 원조사업을 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교실을 잃은 모교 학생들이 천막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고문관은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했다. 공식 모임 같은 데서 먼 발치로 얼굴만 익힌 사람인데, 첫 마디에 관심을 가져 주니 고마운 일이었다.현지 시찰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고문관은 나를 부르더니 “오케이”를 연발하며 곧 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후 고향에서 일이 잘 됐으니 좀 다녀갈 수 없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현지 병원 시찰 길에 잠깐 들렀다. 장성 역두에 목재·시멘트·벽돌·철근 등이 높이 쌓여 있었다. 당시에는 귀하고 값비싼 건축자재를 그렇게 많이 구해 온 것이 대단한 화제였던 모양이다. 누가 그 일을 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장군이 못한 일을 여자 중령이 해냈어야.” “동창생 잘 둔 덕을 톡톡히 보네 그려.”고향 사람들이 한껏 치켜주는 말에 낯이 간지러워 서둘러 자리를 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고향을 위해, 아니 나를 기르고 가르쳐 준 모교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힘 쓴 일이 없어 겸연쩍은 덕담이었지만, 여러 사람에게 좋은 일일수록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간호장교 시절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후배들이 생각난다. 특히 2기생 김명희가 보고 싶다. 전역 후 미국으로 이민 가서 아직 거기서 잘 살고 있는 그는 우리 간호장교 사회에 오래 기억될 일을 했다. 11대(1967년 10월~ 69년 10월) 간호병과장 출신인 그는 여기서 나오는 연금을 쓰지 않고 6000만 원을 모아 재향군인회 자녀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

4, 5년 전 일이다.역시 2기생인 안정순도 기억에 남는 간호장교다. 그는 6·25전쟁 때 나와 비슷한 피란 경로를 겪은 사람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54년 대위로 예편한 뒤 국립정신병원 간호사로 들어가 퇴직할 때까지 열심히 일한다는 소식에 늘 든든히 여겼는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받은 천성의 나이팅게일이다.소숙정은 오늘날 국군간호사관학교의 모체인 육군간호학교 설립에 공을 세운 사람으로 존경받는 사람이다.

인품이 후덕해 따르는 사람이 많았던 그는 10대 병과장(65년 11월~67년 10월) 재임 중, 국방부와 육군본부 문교부 등 유관 기관을 찾아다니면서 정규 간호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설득한 사람이다. 신숙호 예비역 대령은 예비역 간호장교 모임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다. 뿔뿔이 흩어져 제 살기에 바쁜 사람들을 간호장교동우회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 십수년 전 일이다. 성품이 착하고 능력이 탁월한 그가 아니었으면 연락도 못 하고 살 것이다.

<조귀례 예비역 중령·정리= 문창재(언론인)> /국방일보

손경선 , 2006-12-18 , 조회 3467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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