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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입은 하얀 천사들-49-1군사령부 시절/2006.12.05

8개월여의 미국 유학생활은 꿈결같이 흘러갔다. 오랜 집념의 결실인 지상낙원 생활은 너무 짧게 느껴졌다. 이제 미국이라는 나라를 좀 알겠구나 싶을 때 귀국명령이 났다.

1956년 9월 아쉬움 속에 귀국하니까 의무기지사령부로 발령이 나 있었다. 육군본부와 국방부 등 유관기관 요로에 귀국 인사를 하고 부임하려는 차에 또 전속 명령이 났다. 이번에는 제36육군병원으로 가라는 명령이었다.

36육군병원에서는 3개월쯤 있었던 것 같다. 병원본부 간호 주임장교로서 휘하 군소병원 요원 교육과 시설 확충 같은 일로 바쁜 세월이었다.그리고 또 3개월 만인 56년 연말에는 제1보충대를 거쳐 2군사령부로 전속됐다.

후방에 있는 모든 육군병원의 인원 확충과 교육·기숙사 시설 개선 등 간호장교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요직이었다.2군사령부 시절을 회상하기에 앞서 잠깐 1군사령부 창설 시절을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육군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1군사령부 본부조차 초기에는 천막생활을 했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 싶어서다.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로 포성이 멎은 뒤 정부는 육군 편제를 전후방으로 나눠 전방을 관할하는 군대를 1군, 후방 관할을 2군으로 나눠 각각 군사령부를 설치했다.

1군사령부는 강원도 관대리에, 2군사령부는 대구에 설치됐다.“부탁이 있어. 1군사령부를 좀 맡아 줘. 꼭 부탁해.”육군본부 간호병과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기생 황영희 소령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첫마디부터 싫다고 했다. 황영희는 예의 그 설득력 있는 말솜씨로 왜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설명했다. “원하는 사람을 보좌관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잠시만 고생해 달라는 사정에 더 뻗댈 수가 없었다. 박필순 중위를 붙여 주면 가겠다 했더니 그러마고 했다.

박중위는 경주 시절 동상환자 수술에 신기를 보여 준 명 간호사다. 성격이 활달해 매사에 성실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해 꼭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었다.1군사령부가 창설된 것은 53년 12월 15일이었고 내가 의무참모부 간호과장으로 부임한 것은 54년 5월 12일이었다. 봄이 무르익어 가는 좋은 계절이었다. 물이 올라 나날이 푸르러가는 산천을 바라보면서 임지에 도착했으나 근무 환경은 너무 실망스러웠다.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계곡에 자리 잡은 1군사령부는 거대한 천막촌이었다.

사령부 본부는 물론 사령관 숙소조차 천막이었으니 그 시절 나라 살림의 꼴을 알 만하지 않은가. 간호과는 아직 사무실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의무참모부에 간호요원으로서는 내가 처음이었으니 사무실도 숙소도 있을 리 없었다.사령관 백선엽 장군에게 부임신고를 마치고 나와 보니 짐을 풀 곳이 없었다. 숙소도 없는 곳으로 사람을 데려왔다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사령관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즉각 “사령관 숙소 옆에 잘 지어 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숙소는 계곡 가까운 곳에 마련됐다. 비록 천막이지만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 소리가 들리는 곳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지은 숙소였다. 사령관 숙소와 가까워 무섭지 않은 것도 좋았다. 젊은 여자들의 신변 안전에 신경을 써준 배려가 고마웠다.식구가 단촐한 덕분이었는지, 여자에 대한 특별대우였는지, 사령관은 자기 숙소로 우리 두 사람을 자주 불러 맛있는 식사를 대접했다.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한 사람에게 그런 일면도 있나 싶어 크게 감동했다.

<조귀례 예비역 중령·정리= 문창재(언론인)> /국방일보

손경선 , 2006-12-05 , 조회 3165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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