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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르다/06.7.29-최영애
앵가딘 계곡 142.jpg [06.09.21 14:53 / 439.3 KB / 116 hit]
이곳  스위스에서 늘  느끼는 점 중의  하나가  아름다운  자연이나  집들을 보고  잔뜩 기대를 하고서 사진을 찍은 후, 확대를 해 보면   늘 상 실망한다는 것이다.
물론  1차적으로는  부족한  찍사와  평범한  사진기가  이유가 되겠지만,  180도 이상을  볼 수 있는  시야의 범위와     마음이라는  렌즈도 더불어  작동한  영상이라  그 느낌을 그대로 담아낼 수는 없어서,  설사  아무리 좋은 사진기에 사진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본  자연 그대로의 영상은 잡히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자위해 본다.
‘제인 에어’를 책으로 읽었을 때의 느낌을  영화로 모두 말할 수 없었듯이 말이다.
 
특히  이번  과르다에서는  더욱 그러해서  맥이 빠진다.
과르다는  가장  스위스다운 옛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이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슈그라휘트 문양의 독특한 양식의 벽화를 주택 외양에, 방문자를  확인하기 위해 만든  얼굴 만한 크기의  스파이 창이니 아기 창이니 하는 이름을 갖고 있는 현관 옆의 앙징스런 창문. 현관은 예외 없이 아치 모양의 돌로 되어 있어 로마 시대가 연상된다.
고산지대의  바람을 막으려 했음인가,  벽에서 약 한 자는 들어가서  창을 내고 그 창가에 놓여진  화사한 제라늄이며,  생소한  카네이션 넝쿨.
도무지  밋밋한 창문은 용서하지 않음임가,  절대로 절대로  장식이 없는 창은 볼 수가 없다.
창문마다에는  가는 레이스 실로 짠   조그만 커튼들이  빳빳이 풀 먹여 갖가지  모양을 나타내고  때로는  동그란 모빌 모양으로  창문 한 가운데 대롱이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정말이지,  한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넣고 싶었는데….
 
마을 입구의  선물 가게에서  친구와  물건을 고르는데,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라  물어보니  중년의  근면해 보이는 화장기 없는 튼튼한 아줌마가 왈, 자기가 만든 것이란다.
 희소가치에  높은 점수를 주고  일단 하나씩 사고, 모자 사는 것이 취미인  친구 남편은 벌써 스위스에서의  세 번째 모자를  거울 앞에서  째려 보고 있다.
 
가게에서 나와  걸어가며  독특한  과르다  주택이며  벽화를 보고  신기해 하는데  좀 전의  가게 아줌마가  바로 그 집으로 들어간다.
과거 그 대로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아무래도  주택 내부의 모습이 궁금해진 우리는  조금 전,  아침나절의 첫 마수를 구실로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니 아줌마가  부드러운 얼굴로 내다본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들과 딸이 집 안에서  가게의 물건을 만들고 있고, 엄마의 설명을 들은 아들은 기꺼이 내부를 공개하며  설명까지 곁들이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고산지대의 쌀쌀한 날씨에도  실내는 퍽 따스했는데, 외벽의  두터운 두께와  벽안으로 만들어진  조그만 창문들과  낮은 천장이 충분히 일조 하는 듯 하다.
방문 맞은 편은  알프스의 목초가  보이는  창으로  되어 있어서  낮은 천장과 더불어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거의 천장과  맞닿는 듯한, 마치 우리의 장롱을 연상시키는, 타일로 된 벽 난로가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막강한(?)  두께의  돌 난로의  열의 대류로 인해서 알프스의  매운 추위를 너끈히 막아 준다고 한다.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왕이나  성주들의 성에서   보았던  벽 난로가  꼭 그런 모양의, 그런 타일이었다, 단지  타일이 좀 더 고급스러웠을 뿐.
박물관의  골동품이  이곳에서는 아직도 현재형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현관 위의 벽에 쓰여진 1884라는 숫자가  이 집의  지어진 해인가 보다, 설마 했는데….
 
자갈로 깔려있는 오래된 마을 길을 어슬렁 거리며 걷노라니, 게시판의 광고물을 바꿔 끼우는 여자가 있는데  그녀의 신발이 재미있다.
분명히,  코가 뾰족한  한 켤레의 구두이건만, 초록과 노랑색의 짝짝이다.
다가가서 들여 다 보니, 자기가  페인팅 한 것이란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발상의  전환이 나그네 마저 즐겁게 한다.
 
과르다는  해발  1432 미터에 있는  고산  지대의  마을로써, 마을을 향해 올라가면서  산 허리에 둘린  구름을  내려다 보며  돌돌  나사를 감듯 올라가는, 계곡 층에 위치한 아주 고즈넉한  마을이다.
이곳  역시  로마의 지배를 받은  로망슈어를 쓰는  마을로  과르다는' 보다 '라는 뜻의  로마어라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마을의  상징인 듯, 목을 빳빳이 세운 목각 조각,  닭의  초상이  우뚝 서서  호기심으로 가득한  동양인 네 사람을,  호기심어린  눈빛일랑 눈두덕 아래에 깔아둔 채 멀리 산을 바라보고 섰다.
 
나는 이제껏  여러 번 해외에 거주할 기회를 가졌고, 덕분에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지만, 특별히 콜렉션하는  취미는 없다. 아니,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특별히 마음 둘 만한 물건이 없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어느  가정집을 방문하고부터 닭 모양의  그릇이나 장식품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었다. 이곳 유럽에 오니  닭 모양의 집기류를  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닭은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과  연관되어  좋은 이미지를 풍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렇다.  특히, 포루투갈에서는  닭이 각별하다고도 한다. 복을 불러온다고 생각할지도?
출처가  모호하던 미국에서 구입한  닭 모양의 물병도 결국 이태리 중부 지대의 것이었다.
 
이리 장황하게  닭 얘기를 하는 것은  그날  과르다에서  어느 갤러리 전시품인,  도자기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쇠붙이도 아닌  그런 독특한 재질의 어미 닭 한 마리를  거금(?)을 주고 샀다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새빨간  붉은 벼슬을 하고 하늘을 우러러  목청 높이고 있는 그 어미의 새끼는 이미 우리 집에 두 마리가 있던 터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어떤 장인이 구웠다는, 바닥의 모이를 열심히 쪼고 있는 모습의 병아리 닭이다.
이것 역시  빨간 벼슬을 하고 있는데, 예전에  아버지가 ,어느날인가 우리 집 앞 마당에 풀어 놓았던, 병아리에서    벼슬이 올라온 어린  병아리 닭이 절로 생각난다.
그 시절  아버지는  꽤 규모가    양계업을 하셨는데, 동네 머스마들은  우리 집 딸 셋을  ‘닭집 딸’이라고 불렀던 기억도 되살아 난다.
이제는  날 ‘ 닭 집 아줌마’라고  불러 줄 세 남자만이 내 곁에 있을 뿐이지만.
 

손경선 , 2006-09-21 , 조회 3254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1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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