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문네트워크
title icon HOME > 동문네트워크 > 동문여행기

구름에 달 가듯이, 나그네 부부/최영애
grand st bernard info map 063.jpg [06.08.17 00:31 / 392.9 KB / 106 hit]
생 베르나르 고개로  향하는 길, 터널 직전에  두 필의 말을 타고 가는  나그네 부부를  만났다.
서두름이 없이  터벅터벅  말 발굽을 울리며,  검은  챙  넓은  모자를  나란히 쓴  노년의  두 부부의  한가로운  모습이다.
 
언젠가   일요일  아침에  골프를 치고,  인근 프랑스로    점심거리  바게트를  사러갔을때,  길가  밭두렁을  이렇듯  터벅거리는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다.
쌀쌀한  아침 나절을 지나  따스해 지기 시작한  햇살을 받으며  노곤한  몸을 녹이던  그  나그네 생각이 난다.
 
길가에  차를 대고,  다가오는  그들을 찍으려  제스쳐로  양해를   구하니  기꺼운 몸짓으로  미소를 띄워준다.
한참을  넋을  잃고  그들의  뒷 모습을 바라 보았다.
슬리핑 백 하나   달랑  말 허리춤에   매단채,  발길 닿는대로 , 바쁠것 없는  인생살이  쉬엄쉬엄  살아가는  그들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금  다시  만난다 해도  그  꾸밈없던  얼굴을  기억할 것 같다.
 
터널을 지나  길가,   그리  특이할 것도 없는 마을을 지나는데,  곡간으로  쓰이는  커다란  창고  나무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가  눈에 띄여,  스치듯 읽어 보니,  '피에르들의  추억' 이라는  연극 포스터다.
힐끗,  마을 안을 들여다 보니  좁은  골목으로  무언가  냄새가  난다.
운짱의  비위를  거스를새라  얌전한  목소리로 , 그러나  단호히  잠깐  스톱!
 
'썬브랑셰' 라는  마을인데,  그  흔한  숙박업소  하나 눈에 띄지 않는  조그만  마을이다.
어디서나  ' 썽트르' 라고 씌여진  곳으로  향하면  그곳이  그 마을의 모든 것이 되고 마는  스위스  마을의  특징이다.
조그만  것을  추구한다는  스위스답게,  작은 것이  아름다운  스위스이다.
 
역시!
이 마을엔  무언가가 있다.
포스터는  한달간의  연극 공연인데, 80명의  배우와  가수가  출연하다고  하니,  이 조그만  마을도  팔월의  건국 기념일을  자축하기 위한  문화 행사를 갖는 것이다.  어른  30프랑, 아이는  15프랑.
 돌로  지어진  아주 아주  오래된  짙은  회색의   고딕식  성당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오베르쥬' 라는  여인숙 간판이  있고,  여인숙은  새로  만든듯한    나무 다리로  도로  맞은편  주택과  연결되어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나무  주택은  그리  높지 않은  아담한  발코니를  갖고 있는    옅은 색의  나무 집인데,  비스듬히  올라가는  층계며  발코니의   규모가  막 지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가설의  연극 무대같은  느낌을  말이다.
 
성당에  들어가서   성모상 앞의  제단에  촛불을  봉헌하며,    이렇듯  열심히  놀러 다니는  우리  부부를  위해,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들을  위해  저를 대신하여  주님께 빌어 주기를   성모님께  간청하고    나오며,  무거운   성당 문을  밀며  고개를 들어   바라 보니  거대한  알프스  화강암  돌산이  내  시선과   마주한다.
그  돌산을   배경으로  하여   천막을  친 관람석이  마을  중심 부를  꽉 채우며  버티고  있는데,  족히  이백석은  넘겠다.
아하, 익스피리언스!
 
바로  이거구나, 이 전체가  바로  연극 무대였구나.
마을 전체가   세트장이 되고,  몇개 되지  않는  골목들은  그들의  음식점으로  변할 터이다.
8월 1일  스위스 건국기념일의   축제  마지막 날인  12일 ,  저녁  9시  공연을   끝으로   지금의  이 적막과는  달리  얼마나  떠들썩 할 것인가.
그날  저녁의  제네바  호수에서의  불꽃놀이를  위해   억울하지만 , 우리는  여기서  물러서야한다.
 
늦은  아침이  지나, 어느덧  11시가  넘어가지만   마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아마  매일  밤  연극을  마치고 나면  죽음 같은  낮을  보내고  다시  북적이는  밤을   한달 간  맞이 하곤  했을 것이다.
예쁘게  꽃으로  단장한  어느 집  앞의  벤취 위로 ,  잠도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소리 없이  낼름  뛰어 오른다.
 
그야말로  그  흔한   스위스  슈퍼 마켓, 미그로나  꿉도  하나  보이지 않는  동네에,  문을 열지 않은  몇몇  가게  유리 창문엔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사진들이  다닥 다닥 붙어있다.
참으로  신기하다.
  일년 중의  전부가  이  한달에  있는 것  처럼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한달 간  그  많은  관람석을 다  채웠다는 것인데, 지금은  이렇게 아무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마치,  피리 소리에  모든  어린이가  따라가 버린  동화  속의  그  마을 같이
 
스위스  인구 중의  10퍼센트가  농사를 짓는다 하는데, 아마  이 마을도  그  퍼센트의  한  부분이지  싶다.
직업으로서의   일년 간의  농사에서   이  한달은  문화의 달인  셈일게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썬브랑셰'를  검색하니   마을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뜨지를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듯  규모있는  문화 행사를 펼치다니,  평범한  일상에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문화의  실체를  본 것 같아서,  오늘도  나는  이 나라가  부럽다.
 
손경선 , 2006-08-17 , 조회 2911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1 , 스크랩 0
트랙백:  수신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