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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베르나르에서/최영애 2006.8.15
grand st bernard .jpg [06.08.17 00:29 / 438.0 KB / 105 hit]
 '우리 사전에 이제, 불가능은 없다!'
이 말은,  1800년 5월 20일 46000 명의  군대와  함께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를 치기 위해   해발  2473 m의  생 베르나르를  넘은  나폴레옹  팻말 앞에서  읊은   나폴레옹이  한 말의  우리 부부 버젼이다.
생 베르나르고개에  다다르기 까지  비록  잘 닦여진  도로이긴 했어도  얼마나  고불거리던지  평소에   않던  멀미까지  겪어야  했던  이 길을,  그 무거운  대포를  분해해서  한 대당  100명씩의  병사를  배치해,  눈 덮힌  알프스의   눈 바람을 맞아가며  넘었다는  이  험난한  길.
우리가  기억하는 한  가장 높은  우리나라  백두산 보다도, 게다가  오백 미터나  한 수 더 뜨는  높은   고개 마루에서,   팔월의  한 가운데에서도  사정없이 내려치는  눈 보라를 접하고 보니,   한 겨울이나 다름없는  알프스에서의  5월은  그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현세에서는  듣기 좋은 말, '내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라며  용맹스런 말로 치장을 했지만,  사실상의  이 말의  주인공들은  사나운  알프스의  찬 공기에  생존을 위해  스스로  키를 낮춰,    결국엔  저렇듯  굳건하게  꽃을 피우는 저 들꽃같이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묵묵히  언덕을  넘었을  병사들이다.
 
생 베르나르는  사실은,  이런  강인한  나폴레옹  군대  이야기  보다도,  지형의  난조건으로  눈사태를  만난  사람을  구조 하던  생 버나드 개로  유명한 곳이다.
오히려  나폴레옹 이야기는   생 버나드 개의  원조인  베리가  활약하던  시대가   바로, 그가  이 고개를 넘던 시대와  같이 한다는 정도이다.
무릇,  강인함 보다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생명이 길고  선함이  남는 다는 얘기가 아닐까 .   치기어린  용맹함은  세월을 따라  흘러갔어도,  사랑의  행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고개  정상의  생 베르나르에는  오로지  그 옛날 대피소  목적으로  지어진  두개의  수도원이 있을 뿐이다.
크지 않은 호수를  중앙에 두고  수도원   건너편이  이내  이태리 국경이 되는데,   위풍당당  우뚝 솟아   고개를  내려다 보는 생 베르나르 성인의  동상은  마치   고개의  수호성인인듯 느껴진다. 
성인은  11세기의  스위스  주교로,   지역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나  험한  산악 조건으로늘  눈사태에 의해 조난 당하고,  쉴 곳이  없어  아사로 까지  연결되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대피소를 만들 결심을 하게 된다.
지금의 생 버나드의  원조인  베리는  3세까지  있는데, 1세는  41명  까지  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명을 완수한  1세는 지금  베른의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고,  프랑스  파리 근교에도  그의  동상이  있는 공원이 있다.
베리 3세는  이곳  생 베르나르 고개의 박물관  복도의  북밭이  벽에서  박제된 모습으로  나와 상면했다.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근처  인가에서  키우는  개의,  때로는  근 100킬로 까지  육박하는  힘과  온순한  근성의  충성심을 보고 ,  인명 구조견으로  훈련을 시킨 것이  베리에  이어  오늘날의  생 버나드다.
스위스 산으로  그 순종을  간직하고 있지만,  원산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가  않아서  앗씨리아일 수도 있다고 박물관에는 써있다.
 
작년,    더  이상의  사육이  힘들어진  수도원은  18마리의   어미와  새끼들을  시장에 내 놓았다.  물론  여러가지  조건을 내 걸고서.
부자 나라  스위스인 만큼    단숨에   많은  후원인들이   나선  결과,  이곳 보다는  좀 더 따뜻한 마을인  산  아랫동네  마띠니에서  겨울을  나고,  여름엔  고개에서   여전히  수도사들의  돌봄을  받는다. 
근래의  발달된  첨단  장비와  기술로  더  이상  구조견으로소의  일은  할 수가 없고 ,  요즘은  순종을 보존하고   인간 보다  더 인간적인  그들을  보기위한  관광객들을  위해  관광  상품의로서의  가치로  이름을 높히고 있다.
 
민간에게  양도된 후  박물관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수도원  건물의    밖으로는  개의  놀이터가  있는 야외  사육장이고,  안으로는  좁은 층계를  가진  삼층의,    단단한  마 종류로  카펫을 댄  나무  집으로,  그간의  역사와   인근  알프스의  야생초에 대한  슬라이드가  열람되어 있었는데, 늘  알프스  고지대의  들꽃들을 대하면서   때로는   통성명이나  했으면  하던  내 바람이  이루어진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일이  사진기에 담아 두었다.
특히,  올  봄에  샤모니의  알프스에  등산을 갔을때  짚같던  목초지에서  여기저기  무리지어  피어나던  프리지아를 닮은  보라색 꽃의 이름도 알게 되어 얼마나 기쁘던지!
소중한  그 이름은  쁘랭따니에 ,  '봄의,  봄내 나는'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아직  눈 쌓인  둔덕이  많이 보이던  그 때,  지상에서는  이미  햐얀 홀씨를 하고 있던  민들레가   이제사  막 고개를  내밀던 때라, 막연히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 아닐까  짐작하긴 했었는데.....
어릴때  동생들과  중학교 입학식때   받아 온  생물도감을 펼쳐 놓고  식물 이름 알아맞히기  놀이를  하곤 했었는데,  덕분에   친구들에 비해서  식물들의 이름을 많이 아는 편이고,  옆에서  잘안다 잘안다 하니까 더욱  알고 싶어지는 식물이름이기도  하다.
 
올  7월, 이곳을  방문하신  교황님과   사람을  구조하던  그 시절,  의례이  목에 걸던  조그만 술통으로  성장을 한  생 버나드가  반갑게  조우하는  모습을 실은   이곳  매일  아침 신문인 '르 마탱'의  기사도  스크랩되어   있다.
인간들의  대표,  교황과   개들의  대표,  생 버나드와의  만남이라고  쓰지는 않았겠지!
 
 열람실  저쪽에는   개들의  실내  사육장이 있다.
그러니,    그 예전의  수도사들이 지내던  방에  개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개  기숙사(?)에서  있음직한   그런  냄새는 전혀 없고,  정말이지  조그만  완룸  열개 정도인  그  방에서  포근하게  낮잠 자는 개들을 보니  아궁이 위의 아랫목이  연상된다. 
일년에  20마리 정도  새끼를 낳아 전 세계로  분양한다는데 , 그들의  경제적   값어치를  보더라도  그 정도의  숙소는 제공되어야 하지 않을까 보냐.
관광객들을  위함인지,  사육사가  교대로  그들을  산보시키는데,  그때  반기는  관광객들을  위해  앉히기도  하는 등 ,  배려해 준다.
사람과  퍽이나  익숙한지,  이내 쓰다듬어 달라며  목을  내밀고  등을 갖다 댄다.  쓰다듬는  내  손바닥의  촉감이 너무  좋다.
그렇지만 ,  그들이  하자는  뽀뽀까지는 할 수 없어 사양한다.
 
 악천후의    생 베르나르는  어찌나  시시각각으로  날씨가  변하던지,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때는  한 겨울인가 싶었고,  호수는 잠시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안개 속으로 사라져  아쉬워했는데,  박물관에서  나오니  어느새  맑게 개어  새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니,  또  모든 것은 사라지고  짙은 안개에  싸락눈이다.
어느새  돌층계에는 눈이 싸여  미끄러질까  긴장한다.
1년 중에  8개월  동안을  눈 속에 싸여 지낸다하니  가히  눈속의  빠꼼한  수도원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그러니,   박물관을  둘러싼  담장의  사진이  아니더라도  스키와  라켓이라는  눈신발은  일상적인  신발이 될 수 밖에 없겠다.
 
국경을  지나  이태리  땅에 있는   생 베르나르  성인  동상 앞에서  남편의  모습을 한 컷 하려는데,  어찌나  눈 보라가 심한지  눈을 뜨기는 고사하고  앞으로  서 있기도 버거워한다.
그곳의  바람 또한  엄청 강해서  게시판의  안내에 의하면  시속  280킬로미터다.
그날의  시속도  만만치 않다.
 
예전의  수도원은 대개가  오늘날  호텔 등의 모습으로  변모하였기에  이곳의  수도원은 어떨까 싶어 들어가 보니,   긴 복도를  지나   조그만  성당이  있고  그 안에서는  결혼식이 진행 중이다.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나이긴 하지만,  성스런  남의  결혼을 방해할 수는 없는 바,  일별하고  나오는 길에  한쪽 옆의  수도원 성물  전시실에 들러  입구에서  파는  기념품을  산다.
일하는  학생들도  아마도  신학생들인듯, 맑고  깊은 눈매와   복장의   소박함과  청결함이 절로 느껴진다.  밝은 목소리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스위스를  여행할때  우리네와  다른 점 중의  하나는  기념품  가게이다.
지방자치제가   가장  성공한  나라여서  그런지  그 지방의  기념품은  그 지방에서만  볼 수가 있다.  빅토리아녹스  등산용 칼과  뻐꾸기 시계등의  전 스위스를 대표하는  물건을 빼고서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멀고  독특한  곳에  가면   언제  만나랴는  생각에  조그만 것이라도 사려고 하는 편이다.
기왕이면  주방  용품에  관심이  많기도 하려니와   장식품 보다는  실용품을  선호해서  이번에도  생 버나드가  수 놓아진  부엌 수건에 맘이 갔지만   20프랑을  훌쩍 넘은  가격에  멈칫해서  수도원 안의    이곳의   정경과  성인과  다정히  포즈를  취한 개가  새겨진  키  홀더를  샀다.
 
사람을  구조해서  성인에게  주는 칭호인 ' Saint '를  받아  생 버나드가 되었다는 정도의   생 버나드에 대한  얘기를  이곳에  오기 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막연히  영국 개라고  생각했었다.
처음  스위스에  와서  알프스를  지나며  생 버나드 고개의 팻말에  다소 의아해 했던 숙제를  오늘   푼 셈이다.
개를  유난히  좋아하는,  여름 방학을  영국에서  지내고 있는 막내랑  오고 싶었던 곳이지만, 9월이면  이미  문을 닫을 것이라는  한영국씨의  이야기에  놓칠것 같은  염려에  한 걸음에 달려온  곳이다.  고개에서의  살벌한  눈을 보니  그 말이  맞긴 맞는갑다.
가끔  여행 중에  만나는  늠름한 기품의  개들을  볼때면,   에지간한  사람보다도  나은  인물이며   덩치에  감탄하곤 했는데,  오늘  그 중의  으뜸인  명견,    생 버나드와의  만남이다.
 
 
 
손경선 , 2006-08-17 , 조회 3021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1 , 스크랩 0
트랙백:  수신불가

김광자
Date 2007-12-05 16:02:13   IP *.152.*.26 +0 -0
눈내리는 날 한라산 등산을 갔는데 아무것도 안보이고앞사람도 안보이는 나혼자만의 상태에서 불안하고 예수님이 이런길을 가셨을것 같은 너무나 막막했던 어둠의 한라산이 기억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