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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고개 순례를 친구 부부와 함께/최영애 2006.7.20.
grimselpass 308.jpg [06.08.17 00:24 / 426.4 KB / 67 hit]
 아침 8시, 제네바  꼬르나뱅 역에서  친구,  성자를  보내고, 한 잠 잘 요량으로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갑자기  휑하니   예기치 않은 가슴 속의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간다.  대책없이  눈물까지  스믈스믈 기어 나온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후덕한   우리  형님이  명절에  몇일씩  법석대다  떠나는  우리를  배웅하시며  늘 하시는 말씀이 ' 섭섭해서  어쩌나 '였다.
그럴때면  내가 하는 말은 늘  ' 우리 가면  편하지 뭘 그러세요'.
 
친구를 보내고  나니  문득  형님  맘이 생각난다.
그래서  그랬구나. 정말  섭섭하신 거였구나!
돌아가면  말씀 드려야지, 이제야  이해했다고.
나도  이제  조금은 덜 영악해진 모양이다.
 
춘천에  사는,  남편이  교수인  성자는  중, 고교때의  친구이다.
단짝이던  잠깐 동안을 지나  그리 자주 보진 못했어도,  늘 서로지간에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 온 그런 친구이다.
3주간의  유럽  호텔 팩   여행   중간 부분에  시간을 내어, 스위스의  닷새를 우리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이미  한 차례  패키지  여행으로   융프라우를  다녀간  그녀이므로,  가장  스위스 적인 곳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 끝에  결정한 곳이  스위스  고개  순례이다. 
남편은   부럽다면서도, 자기 친구  아니라며  숫제  방관한다.
 
스위스에는  해발  2000미터  이상의  고개가  16개나  있는데, 그 중의 가장 빼어난  장관을 자랑하는  4개의 고개가 있어,  그것은  스위스 중부인  알프스 한 가운데를   정점으로  환으로  연결되어 있다.
길이  위험하다  하여  이곳의   한국  직장 동료들 중에는  간 사람들이 없었는데,   게다가    올  봄에  그  근처를 지나던  자동차가  위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에  두 명 모두  사망한   사고가  신문에  나기도  하여  남편이   걱정했지만,    사고가  났다면   바로  그  후에는  더욱  안전할 수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내   고집으로  결정된 것이니  만큼,  친구 부부까지 태우고 가는 운전길이 내심  걱정된것은 아니었으나 ,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억울한  코스 아닌가.
그러나 ,  의외로   특별히  위험할 곳은   없었는데,  중간 중간  결론을  유보하기로  하다가  고개를  다 내려온  그날  저녁, 우리는  드디어  ' 별거 아닌  위험한  고갯길'로  결론냈다.
그렇지만, 오래전에  도로가  발달하지 못했을   그때에는  그야말로  첩첩 산중이었음은 물론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산악 지방에 둘러싸여 있는  관계로  어딜 가려면  일단 날씨 부터  조회한다.  해가 있지 않으면  '꼼짝마라' 이다.
그러나, 우리같은  단기 여행자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예고된  칙칙한  알프스를  향할 수 밖에  없었다.
행여나  기대하면서,  그러나  역시나  하늘은 시종  흐렸고,    첫 고개인  그림젤 고개에  다달았을 때엔  바로 옆의  호수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뒤늦게  도로  바로  옆에  붙어있는  호수를  안개 속에서  얼핏 확인했을 때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산  아래, 제네바  날씨와는 사뭇 달라서  갖고 온  겨울  파카를  꺼내 입고  자동차를 나서니  제격이다.
길옆의   안개 속에    돌로  만들어진  돔 형식의  희끄므레한  성당에  들어서니,  그 산중에  모던한  형식의  성당 내부가  이채롭다.
고개 정상에서  잠깐 지체하니,  초단위로  변해가는  알프스가  전개된다.  구름과  물안개는  높은 고도에  힘입어  마치  영화  화면이  이동하듯  전개 속도가  빠르다. 
성자는  물론이고  나 역시  처음 보는 알프스의 새로운  모습에  환호를 지른다.  어릴적 친구와  지르는  환호는  그  재미가 남다르다.
 
그  산중의  꼭대기,  호수 건너의  그림젤  수도원의 모습을 쫓아  길을 돌아 다다르니  지금은  그림젤  호텔로  변모해 있고,  폭풍의 언덕을 연상시키는  언덕 위엔  홀로 기도 했을 조그만 경당이,  외관은  세월을 가늠할 정도의  오래된  검은  나무  조각으로  지붕과   벽을  엮은  예쁜 모습에  내부는  다소  어색한   새  제대니  의자들이다.
그림젤 고개에서  내려오니,  이제  여행 수칙  1조에 의해  숙소를 잡아야 할 시간이다.  어두워 지기 전에 숙소를 잡을 것.
인터트리켄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들어서니,    알프스가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앞으로는  빙하의 녹은  물이 만들어 낸  아르 강의  옥회색  강물이   흐르고 있는,  우리가  그 예전  사회시간에  배운,   촌락형성의   가장  좋은 조건인 배산임수다.
 
사실  원래의  계획은  캠핑장의  방갈로에  묵을 예정이었으나,  북구와 달리  땅덩어리가  크지 않은 탓인지    의외로   방갈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친절한  캠핑장  주인은  2분 거리에 있다는  민박집을 소개해  준다기에  따라 가 보니,  5분 거리의 그 집은  스위스 전형적인 농가로  크지  않은  마당에  갖가지의  채소를   가꾸고  있었고   울타리를  둘러서   여러 색깔의  꽃들이  만발했음은  물론이다.
이  집이야 말로,  아이들  모두 출가 시킨   노부부가  남은 방에 민박을 하는  바로  내가   경험 해 보고 싶었던 ' 웬떡 '이다. 
가격도  저렴해서  한 집에  70프랑이니  5만원 정도인데  얼마나  깨끗하던지, 그리고   청소 용구등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얼마나   잘  정돈 되어있던지,   같은  주부 처지인  성자와  나는  주인  할머니의  부지런함에  입이  쩍 벌어진다.  원래  스위스  주부들의  근면함을  익히 알고 있는 바이긴  했어도  말이다.
아래 층  방은 우리가  이용하고,  이층에서는  친구 부부가 묵었는데, 우리 방 옆에는  손님을 위한  주방도 있고,  방에도  접기식  식탁이 있어서  우리는 그날 저녁  준비해 간  치즈 퐁뒤를  백포도주와  함께   근사하게  건배했다.
 
다음날  떠나기 전에, 주인 할머니가  복도  천장을  꽉 채우고  있는  방목하는  소의 목에 다는  큰 종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는데,    동으로 만들어진   실제의  것보다는  큰 것으로    해마다  우수 농가한테  주는   상이라 한다.  우수 농가라  함이  소를  잘 키운 것인지,  우유를  잘  만든 것인지, 그것은  모를 일이다.
테이블 위에는 도자기로 구워진  핸드  프린팅  접시가  장식되어있는데  그것은  10년인가  계속된  우수 농가의 상이라고  한 것 같다.
할머니는   유창한 독어와  짧은  불어로,  남편과  친구 남편의  고교때의  독어  되집기와  할머니 만큼의 짧은  우리 부부의  불어로  해독된 것이니  그리 믿을 만한 것은  못 되지 싶다.
성자  남편, 경수씨는  고교때  독어로  된  소설책도  읽은  실력이라는데   ,  이   거의  일생에  한번  써먹을까 말까한  절묘한  찬스를 이용하지 못함에  퍽이나  애통해 했다.  오기 전까지  너무 바빠  비행기 안에서  겨우  여행에  대한  공부를  했다한다.
한번만이라도  독어를  훑어 보고 올걸, 하면서.
 
오늘  아침, 이태리를  거쳐  춘천 집에서  이곳으로  전화한  성자가 말하길,  아!  그 민박집  너무 생각난다.
무엇보다  캠핑장 옆의  한 주택 마당의  앙징스러움이란!
 나무 기와로  만들어진  우체통  지붕 위의  배낭을 짊어진  달팽이 부터 해서  거북이  두 마리가  그 아래를 지키고,  일가를  이룬  붉은  벼슬의 어미 닭과  병아리들,   노란  부리의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들의  행진.
담도 없는 그 집의  길  가장자리   입구의   바구니를 등에 진  난쟁이 할아버지의  미소.
처음  남편은 그렇게  누구나  집어 가면 그만일 법한 그런 곳에 있는 조형물들을 보고  '가져가도 모르겠네' 하며  속내를  드러냈는데,  요즘은  이곳  문화에  젖어 들음인지,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장족의 발전이다.
 
다음날  그림젤  고개  다음인  수스펜 고개를 넘을땐  하느님, 감사하게도
날씨가   맑아서  파란 하늘과  떠다니는  뭉게 구름은  시야를  넓게 하여  전날하고는  판이한  알프스를  볼 수 있었다.
수스펜  고갯 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알프스는   거대한  공룡  두 마리가  누워있는 사이에  옹기종기  마을이  들어 선 듯했고, 지그재그로  길이  선명하게 들어나  마치  요즘  자주 보는  빡빡 머리에  머리 문신 모냥 바리깡을  댄 듯  선명하다.  방금  높이  쳐다 보던  봉우리를  한바퀴 돌고 나면  이내  우리가 다달은다.
화창한  날씨에  어제는  뜸하던  자동차들이 줄을 이었고,  오토바이 부대가  사이사이 질주하고,  자전거로  하이킹하는  중년의 무리들,   가족단위의  어린아이까지  자신의  배낭을  매고 등산하는  무리들, 그들을 보니  남편하고   등산할때면  의례이  남편이 내것 까지 들고 다니던 생각이 나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반성한다. 
 두 아들과  남편이  날 더러 공주라고 하면    밥하고  빨래하는 공주도 있냐며  듣기 싫어 하던 생각도 났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수스펜 고개를 넘을때는  길가의  카페에서  모닝 커피로  에스프레소를 한잔 하니  아침 먹으로 온 줄 알고  크로와상을 함께 내어 놓는다.
공짜가 없는   스위스인줄  당연히 알지만  고소한 맛에  아침인양  먹는다.
아침 나절에 가득찬  카페 사람들은  의례이  아침 식사를  그런 식으로  먹곤  한다.  식당에서  갓 구은  빵이라  아주 맛나다.
 
다시  한참을   고갯길을  넘다 보니, 길가에 ' KASE '라고  독어로  씌어진  치즈 집  팻말이  있어  가던 길을 돌아  그 집으로 들어간다.
일반 주택으로  단지,  기슭에  목초가  있는 것으로, 보아하니  채마 밭도 있고  치즈를 직접 만들어 파는 집인 모양이다.
역시  담도  대문도  없는 집에  들어서니  현관 입구에  흰 화분에  회색과  흰색의 경계색을 띈  에델바이스가  가득  꽃 피어 있다.
그 옆을  난장이  세 사람이  웃고 있고 , 아래의  고양이가  펄쩍 뛰어 올라 난장이와  에델바이스  사이를 소리없이  지나간다.
현관  오른쪽에는  유리 진열장이 있어서  여러가지  치즈가 있고,  염소 치즈를 본   경수씨는  사고 싶어하지만 , 아무리  벨을 눌러도  소식이 없다.
할수없이   옆의  냉장고  속의  야구르트를  꺼낸 후, 적혀진 가격대로  3프랑을  보기 쉽게  야구르트  자리에  놓은 후  낯 모르는  주인에게  작별을 고한다.
 
수스펜  시내에서  본  포스터가  생각난다.
씨름  경기를  안내하는  포스터인데  우리의  그것과 거의  흡사한데, 단지  귀마개를 하고 있는 것이   달랐다.  이곳의  전통  운동에도  씨름이 있나보다.  아마  천하장사까지는  않더라도  수스펜 장사 정도는 나올테지.
 
수스펜 고개를  넘어  고타르도  고개를 넘는다.
고개 아래서  내려다 보니  빙하 특급 열차가  다닌다는  계곡 사이의  철길이 보인다.  편도  7시간이  걸리는  이  빙하 열차는  겨울에  다니는  관광열차로  어떤 이는  매우 지루했다고도 하는데, 이렇게  사이 사이 내려서  사진도 찍고  땅도  밟아 보지 않는다면  그렇기도 하겠다 싶다.
 
마지막으로  푸르카 고개가  이어진다.  근  2500미터, 해발이다.
푸르카  마을을 지나는데, 본능적인  내  후각이  곤두선다.
마을  시장이  열리면서  여름 축제가  열렸다.
그 조그만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나왔는지  오래된  목조 주택 가인  시장터엔  골목마다  사람들이  그득하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화덕 피자의 진수를 본다.
커다란  벽  난로에  장작을   듬뿍  땐 후,  숯이 되어가는  장작을  옆에 밀어놓고  그  뜨거워진  바닥에  팬이 없이,  피자 도르를  직접  굽는다.
그런 후,  긴 삽자루 같은  가래를 밀어 넣어  다 익은 피자를 꺼낸다.
이렇게  특별한  날에는  손이  많이 가는 전통  요리법의  음식들을  주로 먹는지,  아름드리  둥그런  치즈를  통채로  녹여서  먹는  라클레도  보인다.
 
한쪽 옆에서는  축제에  빠질 수 없는  포도주  시음에  판매를 하고 있다.
매일 저녁의  포도주는  물론,  돈이란 것은  몽땅  책임지자고    춘천에서 부터  부부가  약속을 했는지  매번  돈을  내려는  태세다.  체면치레가 약한 나는  그냥  내버려 둔다.
 
푸르카  고개를  넘어서니, 다시  원점인  그림젤 고개를 만난다.
아까부터  고파오는  배를 위한   합당한  식당을  고르기 위해  자동차안에서  열심히  눈알을 굴리던  나는  드디어  맘에 드는 식당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그 뜨거운 햇살을  즐기느라,  마당에  앉아 있지만, 우리들은  발코니의  처마 밑으로  햇살을  피한다.
빵 바구니의   아래 위로 덮어 싼  치자색의  주머니  보자기가  시선을  끈다.  천으로  된 것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이런 것을  보면   즐겁다.
옆 사람  눈치껏 살피고,  열심히  메뉴판  읽고 하여  우리는  성공적으로  점심 식사를 마친다.
 
성자와   경수씨는  일반 여행객이  다녀갈 수 없는 곳으로의  여행에 대해  여행 내내 감사를 표한다.
그건 나도 동감이다.  나 또한  이  아름다운  스위스  고개들을  맘이  통하는  벗과 함께  동거동락 함에  너무나  감사하다.
 
이곳에서의  성자와의  추억은  너무나  많다.
인근,  프랑스  디본의  일요  노천  시장에서   갓구은 바게트와    신선한 잠봉을 사서,  집에  돌아와  바게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은 일이며,
레만  호수의  끝인  몽트뢰  마을과   건너편  프랑스  알프스의  몽블랑,  에비앙 등, 깊고 깊은 알프스  영봉들을  뚜렷이  볼 수 있었던   몽트뢰  산 위의   주로  대사들이  주로  애용한다는  근사한  호텔에서의   아침에  마신  커피 맛,
몽트뢰에서  불과  10분 정도 거리한  명품 아울렛에서  자잘한  그릇이랑  경수씨는  여행 내내  끌고 다닐 짐이 부담스러워  겨우  티 셔츠  두 장 가져와서  한 장은  잠옷으로  입고   나머지  한장에  스스로도 질렸다며  폴로 매장에서   세일 값에  장 본일,
무엇보다  우리가  지난 번에  다녀왔던  이브와르  가던 길에  열린  벼룩시장을 보고  의기 투합해서  건진  은 집기류들(단돈, 14유로에  세개!).
그땐 몰랐는데,   꽃의  마을이란  이름도  갖고  있는  이브와르인  만큼,   저번 보다도 더욱  화사하게  피어들 있어  온통  마을이  붉은  꽃으로  물든 듯 했던  이브와르에서    이런  꽃 마을에서  머물고  싶었다던  내  친구  성자의   행복해 하던  모습들,
 지난 번에 시간이 없어서  아쉽게  나와 버렸던  식당에  들어가서  이번엔  여유있게  아이스크림과   포도주와  맥주로  입맛 다신  일,
특히,  이브와르의  기억 중엔  그날이  프랑스의  월드컵  결승날이어서 
어여쁜  호텔 앞,  유리창  처마 밑에서   성자의  어깨 넘어로    유리창  안의  주방의  한 청년이  양 볼에  프랑스  국기를  페인팅한채  웃고 있는 익살스럼이다.
아, 그리고  꽃으로  만발한  그 좁은  중세의  골목에  한  홍의를  입은  젊은 승려의  스위스 악기  호른을  불던  해 질녘의   그윽함이여!
 
매일  여행을 끝낸 뒤,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들은  그날의  사진을  컴을 통해 보곤 했는데,  알프스의   구불 거리는 길이며,  아기자기한  마을들이며,   신기해 하던  빙하며,  위의  사진에서  보듯,  알프스를  배경으로  핀  두 송이의  노을꽃(?)이며, 이  모든 것을  보고 난  경수씨의   결론은,
  결국   알프스  들에 핀  들꽃들에  비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가장  귀한 꽃인    노을꽃들  조차도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눈 속에  빠꼼이  올라 온  연 보라빛의  그 아름다움을 우리가  어찌 당할 수 있으랴!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고백할  얘기가  있다, 중년의  건망증에  대하여.
기대에  찬  여행을  시작한 후,  한 시간쯤 갔을까,   길가에  조그만  성당이  보여  잠깐 둘러 보기 위해  차를  내리면서  카메라를  챙기려니  가방이  너무  가볍다.  있어야 할  것이 없음이니.
내게  있어  카메라는  이젠  여행만큼   중요한 것이 되었는데 말이다.
남편은  집을 떠날 당시    문 단속을 하러 들어가 있었고, 나머지  세 사람은  막 떠날   참인  자동차 주위에  있었는데, 그때 내가  카메라를  충전기와  떼어 놓으면서  내  가방에 넣는 것을  서로들  본  처지였다.
그러나   그 순간을  기억할뿐, 가방에 들어간 것은  아무도 기억을 못했지만,  난 분명히   넣은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자동차  트렁크를  샅샅이  뒤져도  못 찾아,  결론은  가방에  넣는 다는 것이  바닥에 떨어뜨렸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아무곳에서도 못 찾고,  친구 부부까지  의기소침하게 만든 나는  더욱 미안해져서  겨우 한다는 말이  남편보고 ' 더 좋은 것 사 줄거지?' 라며 너스레를  떠는  것이 고작이었다.
시간도  점심시간이 되었고  해서,   도로 맞은 편의  산위에서  도시락을  그렁저렁 먹고  차에 돌아 오는데, 제일 먼저  내려간  남편이  빨간 내 카메라를   허공에  달랑거리며  웃고  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찾았단다.  아휴, 기도 막히고  반갑기도 하고.
무엇보다   친구 부부의  밝아진  얼굴을 보니  얼마나  다행이던지!  
 
 
 
손경선 , 2006-08-17 , 조회 3590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1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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