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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터
우는 것이 싫다. 우는 것과 약자의 이미지를 동일시하는 까닭이다. 따지고 보면 약자로 보이기 싫어서인 것이다. 특히 웬만한 일에는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청년 시절부터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굳혔다. 물론 부모 형제나 남편과의 사별 앞에서 보이는 눈물은 다르다. 지난 일은 까마득히 잘 잊어버리곤 하는 것도 울었던 기억일 때 더욱 그렇다. 중학교 때 슬피 울었던 기억 외에는 살면서 언제 얼마나 울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이니 말이다.

   동래여중을 다닐 때다. 집이 있던 대구를 떠나 오빠를 따라 부산 해운대에서 학교를 다녔다. 가끔 어머니가 다녀가긴 했지만 그때마다 통곡을 했다. 어머니와 헤어지는 것이 싫었다. 딱히 힘든 것은 없었다. 다만 어머니를 따라 가겠다는 마음이 학교까지 다니기 싫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당치 않았다. 어머니가 다녀간 후면 며칠은 멍했다. 우리가 살던 집에서는 창문을 열면 해운대 바다가 보였다. 달이 밝은 밤에는 바다가 훤히 보였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절로 흘렀다.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가 그리움을 달래주곤 했던 시절. 눈물이 젖게 하는 그리움을 잊기 위해 오로지 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다보니 우등상을 타게 되고 상을 받으니 신바람이 나서 더욱 열심히 공부에 전념했던 시절이다. 그리움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시작한 공부가 습관이 되었고, 공부벌레라는 별명을 이름처럼 익숙하게 들었다. 공부하면 즐겁고 일을 할 땐 별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 울 시간도 없었다.

   세 자녀를 키우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우는 모습을 아주 싫어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눈물은 정서를 순화시켜 카타르시스를 일으킨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감정의 정화작용을 하고 스트레스 해소도 한다는데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울지 못하게 한 것이 잘 한 것인지 잘 못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장남은 유별나게 설쳐서 매를 맞을 때가 많았다. 매를 맞아도 울지 못하게 했다. 강하게 키우고 싶은 욕심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 번은 매를 맞고 울다가 갑자기 울지 못하게 하는 엄마가 떠올랐는지 씩 웃으면서 아마도 빗물이겠지…….”라며 노래를 불러서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노래는 당시에 유행이었고 나도 좋아했다. ‘사나이가 그까짓 것 사랑 때문에 울기는 왜 울어/두 눈에 맺혀있는 이 눈물은 아마도 빗물이겠지…….’아들은 내가 흥얼거리며 부르던 노래를 많이 들었던 듯싶었다.

   눈물은 슬플 때만 흘리는 것이 아니다. 감당할 수 없어 기쁜 순간에도 눈물이 나고, 억울하고 분할 때도 눈물이 나는가 하면 감동할 때 흐르는 눈물도 있다. 감정이 움직여서 흘리는 눈물은 마늘이나 양파를 다듬을 때의 자극으로 인해 맺히는 눈물과는 다르다. 나는 슬피 우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쳐 울고 싶을 때는 목이 멘다. 이러할 때 울음터가 있다면 목 멘 울음을 쏟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가정상담을 하다보면 부부 서로의 눈물을 볼 수 있다. 남성들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지만 많이 참으려고 하는 반면 여성들은 자주 울음을 터트린다. 올 때마다 울던 내담자의 눈물은 상담회기가 거듭될수록 점점 줄어든다. 때로는 너무도 격하게 울음을 터뜨려 상담을 진행할 수가 없다. 그럴 때는 상담자리가 울음터가 되어준다. 땅을 치며 분통을 터트리고 사무치게 소리 내어 실컷 울도록 한다. 속이 후련해져서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린다. 참 좋은 울음터가 되어준다. 문상을 갔을 때도 그 장소는 울음터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얽히고설킨 털어내지 못한 삶의 사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슬피 우는 경우도 있어 좋은 울음터일 수 있다.

   통곡할 만한 자리라는 뜻의 호곡장론號哭藏論이 떠오른다. 조선 후기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중에 나오는 말이다. ‘아 참으로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 번 울 만하구나라고 하였다. 듣기만 하여도 상처받은 감정이 치유되는 듯하다.

누구나 울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주위가 마음대로 울 수 있도록 버려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울음을 삼키고 살아간다. 이럴 때 목 놓아 울 수 있는 울음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울음터는 감정치유의 장소가 될 것이다. 산으로 들로 나가보아도 시야에 걸리는 그물들이 쳐져 있다. 광활한 그 어떤 곳에 울음터가 있다면 한 번쯤 가 볼 만도 할 것 같다.

   창밖에 칠백년 된 회화나무에서 우는 새들의 지저귐이 정겹다. 저 오래된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을 들었을까. 분명 노래 소리만은 아니었을 터. 울음소리의 사연을 혼자 듣고 속으로 얼마나 삭였을까. 나무는 속이 탄 듯 시커먼 고목으로 웅크리고 있다. 고목은 인간의 온갖 풍상을 겪듯이 버티다가 봄이 오고 여름이 되면 무성한 잎사귀를 드리우고 바람에 살랑거린다. 눈물을 거두고 미소 짓는 여인으로 보인다.

   마음이 적적하여 가곡을 틀었다. 그토록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비목을 듣는 순간 슬픔이 가슴을 적시고 울컥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마도 나이 탓인가 보다.


                                        2018년 울산문학 봄호

성주향 , 2019-02-24 , 조회 274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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