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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

  ‘들꽃만화 페스티벌’이 열렸다. 들꽃학습원에서 열린 울산의 최대 만화잔치였다. 초등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에게 꿈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꿈과 사랑 그리고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 이란 현수막이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다양한 들꽃들이 싱싱하게 웃고 있었다. 피지 못한 채 떨어져 있는 꽃봉오리 하나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 꽃봉오리에 만화 좋아하던 친구의 얼굴이 겹쳐졌다.

  중학교 1학년 때 단짝인 영희는 틈만 있으면 연필로 만화를 쓱쓱 그리곤 했다. 수업시간에도 만화를 그리는 때가 많아 곁에서 보는 나는 마음을 졸였다. 선생님께 들킬까 싶어서였다.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다.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풍경이며 인물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때론 마음을 졸이다가도 넋을 빼고 보기도 했다.

  우리는 해운대에서 동래까지 기차통학을 하였다. 기차를 기다리면서도 영희는 틈만 나면 만화를 그렸다. 돌멩이는 연필이었고 땅바닥은 화선지였다. 내가 돌멩이로 영어 단어를 쓰면서 외우는 동안에도 친구는 뾰족한 돌로 땅바닥에 만화를 그리곤 했다. 어째서 공부를 하지 않고 만화만 그리는 걸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당시 만화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다. 만화는 청소년의 정서를 해치는 유해한 서적으로 백안시되던 때였다.

  만화의 상상력과 스토리가 산업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오늘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사람과 자연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게임이나 웹툰(webtoon) 등으로 나날이 확장되고 있다. 만화세계의 발전을 볼수록 친구가 생각났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만화를 접할 때마다 궁금했다. 수소문을 하여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혹여나 친구의 이름이 보일까 해서 유명한 만화가들의 이름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1960년 동아일보에 고바우영감 만화가 연재되어 읽은 적이 있다. 고바우영감은 머리와 코가 뭉툭하게 생겼다. 머리에는 안테나처럼 솟은 한 올의 머리털은 지금 생각해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모습이지만 나에게 만화는 여전히 외면당했다. 만화책을 한 아름씩 빌려와서 방바닥에 배를 깔고 킥킥거리는 남편과 아이들이 이해되지 않은 건 당연했다. 그러면서도 진료실에 앉아서 시간만 있으면 쓱쓱 만화를 그려내는 남편이 신기했다. 쥐를 캐릭터로 한 만화를 그릴 때는 호기심도 생겼다. 분명히 쥐는 맞는데 내가 생각하던 징그러운 쥐가 아니었다. 얼마나 귀엽고 재미있게 그리는지 미술에 상당한 재능이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은 만화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사라지게 했고, 소식 없는 친구 영희가 간간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미술 분야에 문외한이다. 작은아들은 미술을 전공하여 현재 영상디자인과 애니메이션 분야의 전문가로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분명히 부모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성격유형 검사를 해보았다. 내향성이고 예능에 소질이 있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의술도 예술일까. 남편이 예능에 소질이 있었던 걸 의사라는 직업 속에 숨겨두었던 모양이다. 두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가기를 바라면서 의과대학을 가도록 세뇌교육을 시켰고 엄청 노력했다. 그럼에도 작은아들은 미술공부를 한다면서 서울로 유학을 갔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길이 따로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그 또한 남편의 유전자였다.

  나는 아직도 미술에 대한 감각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으며 여전히 문외한이다. 그러나 만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작은아들이 제작한 ‘이와 이의 대모험’ 만화 애니메이션과 키네틱 비디오아트 영상작품들을 보면서 만화에 대한 관심이 달라졌다. 반구대 암각화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그림을 그리는 동물과 바위그림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환경파괴 메시지를 담아 인간의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등 어린이 작품을 뉴미디어로 제작하는 아들 덕분에 만화세계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만화산업의 발전을 볼수록 만화 좋아하던 친구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만화를 볼 때마다 어디서 뭘 할까 싶던 궁금증이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그리움으로 감정의 색깔이 바뀌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땅바닥에 만화를 그리던 영희는 무시로 불쑥 간절한 그리움으로 솟아나곤 한다. 언젠가는 만화계에서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아들을 보면서 확신이 되었을 즈음 영희의 소식을 다시 수소문했다. 결과는 슬픈 실망이었다. 오래 전에 이승의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진 뒤였다. 소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하늘로 간 것이다.

  떨어져 시든 꽃이 새삼 안쓰럽다. 피지 못한 꽃이 된 친구생각에 가슴이 아다. 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고등학교부터 만화 전공 학교를 다닐 수도 있는 세상이다. 대학에서도 만화를 전공하였을 것이고 작품전으로 세계방방곡곡 펼쳐갈 수 있었을 소질이 새삼 아깝고 아쉽고 안타깝다. 땅바닥에 슥슥 돌멩이를 움직이기만 하면 생명력을 갖던 캐릭터들. 그것들에 제대로 된 생명력을 부여하지 못한 채 져 버린 꽃. 아련한 영희의 모습은 여전히 향기조차 수줍은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이다.

 

                                         울산문학 2018년 봄호(3월)

성주향 , 2018-04-02 , 조회 605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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