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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우고 또 태우고

  잊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했다. 잊지 않으려고 메모까지 해서 책상 위에 두었으나 시간을 놓쳤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신경을 곤두세워도 보았지만 일에 몰두하다보면 그 결심도 소용이 없다. 왜 이렇게 자주 잊어버릴까? 이제는 정말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더 큰 메모를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두었다. 그런데 또 컴퓨터에 집중하다보니 타는 냄새가 나서 아차 했다. 그날은 다시는 태우지 않으려고 빨간 메모지에 굵게 글을 써서 컴퓨터 맨 위쪽 중앙에 붙여두었다. 잘 보였다. 수시로 보다가 시간이 되어 부엌으로 가서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고구마가 노릇노릇 물기 없이 잘 삶아져 있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났더라면 또 새까맣게 탄 냄비를 힘들게 씻고 있었을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이나 목표를 향해 열정을 불태운다면 좋은 결과를 맺으리라 싶다. 잉걸불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힘과 용기가 불쑥 솟는다. 성공한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이글이글 불길이 타오르듯 하다. 음식을 태우면 재가 되지만 열정을 불태우면 등불 밝힌 까치밥처럼 풋감이 익어간다. 학구열을 불태우면 성공의 길이 열린다. 사업에 열정을 불태운다면 실패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서 끝내 성공하리라.

  “촛불이 빛을 내려면 스스로 불타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촛불을 밝혀들고 나이팅게일 서약문을 낭독하던 그 날의 불길은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목마름의 불씨는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어디엔가 닿기만 하면 불이 확 붙는다. 남편과의 만남이 그러했고 울산YWCA와 가정법률상담소 창립이 그러했다. 사계절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으니 젊은 시절의 열정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나보다. 지금도 나의 일터에는 직장인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타오를 자세로 임하고 있다.

  누구나 열정을 갖고 노력한다면 이루어질 것이다. 육십이 넘은 지인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왕성한 활동력과 열정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십 둘에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지지하고 격려했다. 그녀는 힘과 용기를 얻어 대학원에 입학을 하였고 졸업 후 평생에 하고 싶었던 예능의 꿈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녀의 열정 역시 불타올라 재능기부를 하면서 사회 곳곳을 밝히고 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제임스 딘의 말이 내 열정에 불을 지핀다. 나의 열정은 학문에 매진도 했지만 젊은 시절엔 기타도 치며 젊음을 즐기곤 했다. 연습할 시간이 없어 기타에 대한 미련만 갖고 밀쳐둔 채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해버렸다. 손때 묻은 기타는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기타를 들 수 있는 때를 기다리며 눈만 맞춘다. 눈부시게 번쩍이는 악기들이 많은 요즈음,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기타를 들기가 어색하고 두려움이 앞섰다. 멜로디도 치고 리듬도 곧 잘 치던 솜씨가 완전히 상실되어 처음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부담이 가슴을 짓누른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기타를 들겠다는 꿈을 가져본다. 꿈이 있기에 열정을 되찾을 수 있고 그 열정에 불이 붙는다면 활활 타오를 것이다.

  산수傘壽를 앞두고 보니 열심히 살아온 세월마저도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러던 차에 시적수필을 쓰고 싶어 시조공부에 매달렸다. 젊었을 땐 기억력이 좋아 컴퓨터란 말을 들었으나 지금은 시 한수를 외우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 뇌세포가 위축되고 모든 기능이 저하되니 나이를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렇지만 포기 하지 않는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기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되뇌면서 열정에 불을 붙이고 ‘옛 시인의 노래’를 불러본다.

  “좋은 날엔 시인의 눈빛 되어 시인의 가슴이 되어 아름다운 사연들을 태우고 또 태우고 태웠었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은 그 풍경이 열정의 상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서산너머로 지고 있는 저녁노을처럼 내 생의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열정을 불태울 것이다.

  아~ 또 타는 냄새다. 화들짝 놀라 부엌으로 달려갔다. 냄비를 새까맣게 또 태웠으니 이걸 어쩌나…….

 

                                     울산문학 20117년 겨울호(82호)

성주향 , 2018-01-04 , 조회 1908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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