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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저린 날

  햇빛이 쨍쨍하더니 갑자기 후드득 비가 내리고 비바람이 몰아친다. 인생여정과 비슷하다.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지만 진퇴양난에서 헤매기도 한다. 삶의 길목에서도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비포장 길로 들어가기도 하고 길이 없는 곳에서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던가. 덜컹거리는 길을 지나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야만 눈부신 햇살을 볼 수 있다.

  생과 사가 자신의 의지가 아니듯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도 그러하다. 부유한 가정에서 풍족하게 살거나 가난한 부모 밑에서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쉽진 않겠지만 부모를 탓하거나 원망하기보다 스스로 성숙한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인생의 바다는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때로는 집어삼킬 듯한 험난한 파도가 덮치기도 하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잔잔해지기도 한다.

  어느 어머니가 성인이 된 아들을 데리고 내담하였다. 대학교를 중퇴한 청년은 눈을 깜박이는 틱장애가 있었다. 틱(tic)은 본인의 의도가 아닌데 반복적으로 불규칙하게 근육이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틱장애를 귀신의 작용으로 판단하고 굿도 여러 번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급기야 정신병이라며 강제입원을 시켰다고 한다. 틱장애는 정신병은 아니다. 아들은 자신이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하여도 들어주지 않는다며 억울함과 분노를 담아 호소하였다. 자신을 강제로 입원시켰던 사실이 저장된 휴대전화를 보여주면서 어머니 속에 있는 귀신을 먼저 쫓아내달라고 애원했다.

  청년의 틱장애를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왔는데 갑자기 눈을 깜빡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어서 놀라고 걱정이 되었다. 눈을 깜빡이지 말라고 혼을 내어도 소용이 없었다. 틱장애가 사회생활을 할 때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서 겁이 덜컥 났던 것이다. 그대로 두면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아서 몹시 고민이 되었다. 충격요법을 주면 깜빡이는 행동이 멈출 것 같아 나름대로 궁리한 방법을 써 보기로 하였다.

  비타민C 주사는 근육 또는 혈관주사로 가능하다. 근육주사는 아프기 때문에 주로 링거에 희석해서 주입하거나 앰풀을 따서 주사기에 뽑아 직접 혈관에 서서히 주입하게 되어있다. 아들에게 근육주사를 놓으면 눈 깜빡이는 게 나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양해를 구하고 엉덩이에 근육주사 놓았다. 얼마나 아팠는지 아이가 펄쩍 뛸 정도였다. 충격요법이 우연인지 그 후 다시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다행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청년은 어머니 첫 결혼에 실패하고 재혼해서 낳은 아들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이 심해 부부싸움이 잦았고 아들에게도 폭력을 자주 써서 늘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틱 행동이 귀신의 짓이라고 생각하여 여러 번 굿을 했다는 고백을 했다. 그 당시 그녀는 환청이 들리고 전기에 이상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콘센트에 플러그를 빼어버리는 이상행동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질병을 앓고 있으면서 아들을 돌보았던 것이다. 청년은 긴장하고 불안하면 더 자주 깜빡거렸다. 볼수록 마음이 저렸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아들은 제발 어머니와 떨어져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걱정을 하는 양가감정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청년은 내가 자신의 말을 공감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순간 갑자기 얼굴이 밝아지며 틱이 느려졌다. 비록 틱장애를 갖고 있지만 생각과 말은 정상인에 가깝게 느껴졌다. 오랜 세월 동안 심리적인 문제가 해소되거나 치유되지 않은 것이 안타깝고 아쉬운 생각만 들었다. 청년의 간절한 마음을 생각하며 어머니와의 격리방법을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거의 마음 저린 일들과 마주한다. 하지만 이번 일은 어린 날 잠시 틱장애를 겪었던 내 아들이 생각나 더욱 마음이 쓰였다. 청년도 이 상황을 잘 극복하여 끊임없이 출렁이는 인생의 바다를 잘 헤쳐 나가기를 기원해 본다.

 

                                           울산수필가협회 제18집

                                                   2017. 11. 3.

성주향 , 2017-11-05 , 조회 2030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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