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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여행을 좋아하지만 갈 수 없는 경우에는 방콕행이 최고다. 방구석에 콕 들어 박인다는 말인데 여행지가 방콕인줄 알고 그대로 알아듣다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그러다가 마음이 시리고 답답할 땐 툭 털고 일어서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삶의 의욕이 생긴다. 밖에서 추위에 떨고 더위에 헉헉거리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고 위안을 받는다. 집안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그 점 하나만으로도 편안함에 감사할 뿐이다.

  안방에서 세계여행을 하면서 명소들을 보고 즐긴다. 동문회 밴드에 올라온 동영상으로 기차여행을 한다. 모스크바에서 베이징까지 시베리아대륙 횡단철도 기차여행이다. 기차에 몸을 싣고 긴 여행을 하고 있다. 차창으로 비치는 자연을 감상하며 달리는 기분은 어디에 비할 바 없다. 가슴이 확 트이고 온갖 번뇌가 사라진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짜증을 내거나 분노에 차 있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즐겁고 신나는 장면뿐이다. 평소에는 한가롭게 동영상을 볼 수 없다. 그러다보니 모처럼 접한 영상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따뜻한 자리에 누워 음악을 듣는다. 임형주 팝발라드 모음집을 들으면서 서울의 어느 행사장에서 생음악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천여 명이 모인 장내가 감동의 물결로 술렁거렸다. 이미자의 노래인생 50년을 다시 보고 들을 때는 동시대를 살아 온 공감대를 느낀다. 무슨 선천적인 성대 악기를 지닌 것일까 신비롭게 느껴진다. 나는 두 번만 크게 소리를 질러도 곧 바로 목이 쉬어버린다. 음성이 변하고 호흡이 짧으니 노래를 부르기보다 듣기를 즐긴다. 구슬픈 노래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젊은이들의 발랄하고 경쾌한 노래를 들으면 곧 바로 흥겹고 즐겁다. 이렇게 감정의 물결은 노래 따라 흐른다.

  음악으로도 힐링을 한다. 긴장을 풀어주고 증오의 감정을 진정시키며 통증까지 감소시킨다니 대단한 감정치유 영역이란 생각이 든다. 모처럼 방 한쪽 구석에 세워둔 기타를 꺼내든다. 연습할 시간이 없어 그저 바라만 보던 기타이다. 기타클럽회원들이 모여 합주를 하며 즐겁고 행복했던 젊은 시절이 뇌리를 스친다. 만나면 히히 호호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연주회를 앞두고는 합주연습보다 핑크색 드레스니 빨강드레스 등등 하며 의상에 관심이 더 많았던 것은 젊은 덕분이다. ‘기타선율 속에 차 한 잔을…….’ 라는 주제를 걸고 탁아소 설립 모금을 하던 일, 소년원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면서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 눈물 흘리던 일, 기타를 어깨에 메고 밤 열차를 타고 강릉경포대를 향하던 추억에 잠기면서 행복한 시간이 흐르기도 했다. 오랜만에 아무도 없는 방에서 ‘그리운 사람끼리’를 부르면서 기타를 치는 순간이 더 없이 즐거웠다.

  책은 나의 탈출구이다. 마음에 먹구름이 에돌고 화가 치밀 때 책 한 권을 꺼내든다. 심취하다보면 구름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듯하고 화는 승화되어 평온을 되찾는다. 화가 나는데 어떻게 글이 보이며 읽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지만 사람에 따라 스트레스해소나 분노조절 방법은 다양하다.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읽으면서 마음의 고요를 찾기도 했다. 작가는 수행승으로서 영혼의 치료사이다. 삶과 고통 그리고 행복 등 마음속에 존재하는 일백 여덟 마리 코끼리 이야기이다. 명상과 깨어있음의 밧줄로 마음 속 코끼리를 붙들어 매는 순간 문제는 사라진다고 한다. 다스려지지 않는 인간의 마음은 술 취한 코끼리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이다.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먼저 남에게 베풀거나 주기보다 받기만 원하고 남의 탓과 원망으로 매달리며 내려놓지 못한 마음자리에 질병이 넘나든다.

  'Give and Forget'이란 말이 귓가를 맴돈다.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이 그리움에 젖어 가슴에 왈칵 안긴다. 푸켓 팡아만에서 남편과 마주보며 두 손을 꼭 잡고 웃는 모습이다. 남편과 함께 방콕으로 여행 갔던 그 시절은 정말 행복했었다. 방콕에서 방콕여행 사진을 보니 남편이 곁에 있는 듯하고 옛날 그 모습이 생생하다.

산수(傘壽)를 앞두고 나이 듦에 외로움이 스친다. 외로움은 더 외로워야 밝아진다는 말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혼자여서 외로운 것이 아니고 혼자일 줄 몰라 마음이 부산하다’고 한다. 혼자 노는 법은 '혼자 있는 법'과 통한다고 하기에 혼자서도 잘 노는 길을 찾아본다. 인터넷 바다를 헤엄쳐 다닌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영화를 보고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으니 참 살기 좋은 세상이란 생각이 거듭 든다.

  방콕에서 혼자서도 잘 놀고 즐기며 마음 다스리는 하루해가 너무도 짧다.

 

 나래문학동인지 23집

   2015. 12. 3.


성주향 , 2015-12-29 , 조회 1209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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