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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추억

  잠 못 이루는 밤이 있었다. 별이 빛나는 그날 밤, 환상의 무대에서 본 너의 자태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이 곳 저 곳 기웃거리다 멀리서 너를 보았지만 용기가 없어 다가가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곤 했다. 남모르는 심연에 오롯이 간직하고 살아 온 세월이었다. 해마다 라일락꽃 향기가 스치면 혼자서 향기 따라 무작정 걷기도 하고 꽃의 계절이 끝나면 동면을 취하듯 그리움만 안고 사색에 잠기면서 수많은 세월을 보냈다.

  어느 늦가을, 우연히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벗을 만나 회포를 풀 수 있었다. 성악가인 그녀와 나는 크고 작은 음악회나 분위기 향긋한 찻집을 찾아다니면서 같은 꿈을 키워갔다. 장생포 바닷가 작은 무대에서 너와의 첫 만남은 서툴고 어색했지만 함께 있는 그 시간은 황홀경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한 순간도 잠깐일 뿐, 희망에 부풀고 소중하게 간직하려던 꿈은 그 단체가 와해되면서 애틋한 마음만 안고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중년이 된 어느 날, 너를 다시 만나는 순간 요동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자태와 매력 있는 모습은 예전에 보았던 동경의 대상 그대로였다. 인연의 끈이 있어 다시 만난 이후부터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었고 동행하면 참으로 행복했다. 내 동료들은 어디서나 너와 나를 중간 자리에 나란히 앉혀주었고 곁에 있는 너를 빛나게 했다. 그러나 나는 네 수준에 발맞추지 못해 늘 부족함을 느꼈고 실수라도 할까싶어 끙끙대며 노심초사하곤 했다.

  십여 년을 함께 하면서 느꼈던 희로애락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떠오르고 별이 총총한 밤이면 나를 부르는 듯 반짝거린다. 되돌아보면 매 주 엄마들이 만날 때도 동행하고 히히 호호 수다를 떨 때도 말없이 기다려주던 네가 참 고마웠다. 봄가을 야유회를 가면 맑고 고운 노래로 즐거움을 주었고 교도소를 찾아 위문공연을 갔을 때는 상처 많은 그들에게 간드러지는 멜로디로 위안을 주던 네가 자랑스러웠다. 다방을 빌려 ‘음률 속에 차 한 잔을…….’ 현수막을 걸고 노래에 취했던 그 날 밤, 생음악을 들려주던 그 멋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기억나니? 함박 눈 내리던 그 겨울, 강릉행 밤 열차를 타고가면서 너를 꼭 껴안고 노래 부르던 행복했던 순간을. 음악에 도취되어 함께 노래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야단을 맞을 땐 창피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도소리 철썩이는 경포대 바닷가 커피숍의 현란한 불빛아래 동료들은 함께 흥청거렸고 너의 아름다운 선율은 앙코르까지 받았으니 참으로 자랑스러운 내 사랑이었다.

  기타클럽 정기연주회를 잊을 수가 없다. 수백 명의 청중들 앞에서 너의 위용은 너무도 당당했다. 나는 세 번이나 예쁘고 화려한 무대 복을 가라 입으면서 너를 빛나게 했다.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기까지는 한 곡 한 곡을 갈고 닦으며 함께 했던 시간들 덕분이다. 스무 여곡을 연습하면서도 잘 버티어 주었고 몸살이 날정도로 힘겨워도 묵묵히 따라주던 그 배려가 참으로 놀랍고 고마웠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너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혹시 마음 다치지 않았나 싶어 마음이 아렸다. 돈크라이포미아르젠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를 연주 할 때는 만돌린이 필요했었다. 만돌린의 간드러지는 트레몰로를 위해 잠시 너를 내려놓던 순간 아마도 너는 당황스러웠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질투를 안으로 삭이면서 사랑스런 눈빛으로 지켜봐주는 자태가 놀랍고 마음 든든했다. 그 숱한 세월을 애무하며 서로를 소중하게 간직해 왔지만 너와 나를 갈라놓는 비운을 겪어야 했을 때는 너무도 괴로워서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먼 후일 재회의 기쁨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삶에 쫓기다보니 너를 돌아볼 날이 점점 멀어졌었다. 가까이할 수는 없었지만 한 번도 잊은 적은 없었다. 지난날을 회상하다 미련 때문에 만나러 갔다가 아쉬움만 남기고 되돌아오곤 했었다. 너를 닮은 어떤 모습을 보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듯 마음에 파문이 일곤 했다. 치솟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심호흡을 하며 사르르 눈을 감는다. 언제 어디서나 맑고 애절한 기타선율이 흐를 땐 너를 만난 듯 희열에 차 지난날을 회상하며 명상에 잠기곤 한다.

오늘도 서산에 노을이 붉게 물들고 짧아지는 산 그림자를 보면서 함박눈 내리는 경포대 바닷가의 추억에 잠긴다. 이제나 저제나 때를 기다리다 희수가 눈앞에 다가왔구나. 그래도 언젠가는 꼭 너를 만나 회포를 풀고 싶어 때를 기다리고 있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한쪽 모퉁이에 서서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는 너의 모습을 보면 눈에 이슬이 맺히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직도 못 잊는 나의 첫사랑 기타여!

 

빗줄기 현을 삼아 알맞게 조여 놓고

마음이 울적 할 땐 손끝으로 고르다보면

내 노래 라일락 향기 바람 따라 퍼져간다

<기타를 치며>

 

                                          2014. 12. 나래문학 22집(공동테마-첫 사람)

성주향 , 2014-12-26 , 조회 1400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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