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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포진 일기

대상포진 일기

윤 언 자

긴 긴 해에 지쳐있는 초록의 잎들이 서서히 단추를 연다. 그들은 저 너머로 가서 쉬련다. 노란색갈이 은행잎에 옷을 입힌다. 지난밤에 야간 상담을 하여 잠도 못잔 상태에서 유별나게 독감예방주사를 일찍이 맞았다. 몸이 으슬으슬 했건만 오후에는 텃밭으로 가자니 겨우 주변에 가을풍경이 시를 읊어 주어 고단함이 달래진다.

그날 저녁에는 생명의전화친교위원회에서 ‘충탐해판’ 이라는 상담 투사기법을 발표하기로 되어있다. 예방주사를 맞은 몸은 이미 병균과 싸우고 있는데 책임감이 더 우선이었다.

이튼 날 오전에는 수목원의 학생들이 숲 해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로한 몸은 수목원으로 향했다. 그 저녁에는 지난달 결석한 것이 걸려서 생명의전화 상급반 공부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흗날 오전에는 그나마 몸을 쉬어주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후에는 가정법률상담소에서 면접상담을 해야 하는 당번을 빠질 수 가 없었다.

과한 일로 지쳐있는 몸은 그날 저녁부터 배꼽 좌측 옆의 근육에 콕콕 찌르면서 말을 한다. 나흗날에는 미련스럽게 고통을 관찰을 한다나. 닷새가 되던 날에는 수목원에 갔다가 사람들에게 병을 자랑하니 늑간신경통 이라고 한다. 누구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낫다고 한다. 인터넷은 늑간신경통, 대상포진이라고 알려준다.

그날은 견디다 못해 내과진찰을 받았으나 근육에 관한 처방이었다. 쿡 쿡 하는 노래는 치료약이 아니라고도 마다했다. 마음 한구석은 이대로 나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나 엿새가 되니 통증은 톡톡 튀는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댄다. 몸 전체를 살짝 튀어 올렸다 내려놓는 느낌이랄까. 아픈 몸은 초죽음 돼 햇볕 쪼이는 병아리 같았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나. 어려운 일은 겹친다더니그날 따라 딸과 아들 손녀까지 모였다. 이런저런 반찬을 하느라고 움찔거리는 힘들음은 숨겨야 했다. 몸은 천근만근이 돼 방바닥에 누어야 하나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가고 싶으나 일요일에는 참을 수만 있으면 다음날 아침을 기다릴 수밖에.

여드레 되는 날 아침이 되어 좌측 젖가슴 한 참 아래에 빨간 꽃송이가 대여섯 개가 돋아나 있었다. 순간 “어머나 대상포진이네!” 일주일간이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이렇게 빨간 꽃송이가 피어나는구나. 그동안 꽃을 피우기 위한 몸부림이었구나. 그래! 질병도 고통이 없이 영글겠는가! 약 십오 년 전 정초에 전신마취 네 시간 끝에 무지외반증인 양 엄지발가락을 수술하였다. 뼈를 깎는 아픔이었다. 사날을 지내고 나니 왼쪽 팔 안쪽 손목위로 빨간 꽃송이가 띠를 이루어 생겼다. 따끔따끔한 심한 통증으로 짜증스러웠다. 이 주 이상이나 약을 먹으니 그제야 통증이 가라앉고 딱지가 앉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이 생기지” 의아심을 품기도 했다.

그 후 새로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주로 농촌 어른들이 빨간 꽃송이로 입원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 후로 그 병으로 입원치료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법 많이 들린다. 비싼 예방주사도 나와 있다. 내가 그것으로 고통을 또 받는다는 것이 남새스럽기도 하다. 요즘은 딸을 결혼시킨 친정어머니가 콕콕 찌르는 이런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예방접종으로 독감은 막을 수 있을까마는 오히려 빨간 아픔을 겪게 되다니. 예방을 하려면 주사만 맞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구나. 몸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

머리로 알지만 몸으로 행동을 하지 않으니 한심하다. 병균을 주입해서 병을 생기게 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나의 어리석음은 또 한 번 시련을 맞았다. 하지만 또 다른 깨달음이 생겼다. 한동안 오전오후로 쉴 틈도 없이 삼사십대인양 살아온 욕심의 죄 값이다. 쿡쿡 찌르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는 과로의 몸은 배겨낼 재간이 없었는가 보다.

실천이 없는 오만한 지식, 아무 쓸데없는 욕심덩어리. 언제부터 칠십 프로만 활동하고 살자고 다짐을 했던 것이 허사였다. ‘이젠 빨간 꽃송이는 더 이상 피게 하지 말아야지’ 라고 가슴 속으로 중얼댄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여정길이 이렇게 울퉁불퉁 하구나. 몸의 나이는 먹는데 마음의 나이는 안 먹겠다고 하는 것도 병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 행동의 화려함보다는 절제의 호기심을 지녀야 되지 않을까. 활동을 줄이자! 지각을 하는 것도 늙음의 모습이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불고염치, 낯부끄러울 일이지 뭔가. 내 몸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세월은 나를 비켜가지 안잖아.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수북하게 널브러진 그 담벼락 옆으로 지나가니 ‘어머나, 그랬군요! 하면서 측은한 눈빛을 보낸다. 스산한 바람은 외롭다.

 

 

윤언자 , 2014-09-11 , 조회 1462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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