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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추억

인터넷 바다를 헤엄치다 그물에 덜컥 걸린 갈색추억 노래가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그린다. 따끈한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책갈피에 끼워놓은 추억들을 넘겨본다. ‘희미한 갈색등불 아래, 음악에 취해서 사랑에 취해서 끝없이 행복했는데.’ 추억들이 음률을 타고 한 장 한 장 넘어간다.

  청소년 시절, 지금의 스마트폰중독자처럼 라디오를 귀에 대고 살았다. 바깥에 내리는 빗줄기는 기타를 연주하듯 들리는 한밤중, ‘별이 빛나는 밤에’ 프로그램을 즐겨 들으며 꿈을 키우고 스스로 행복감에 젖곤 했다. 50년이 지난 오늘밤은 라디오가 아닌 컴퓨터 앞에서 ‘내 마음의 반려’들을 모아 놓은 갈색으로 변한 노트를 펼쳐본다. 일기도 있고 노래 가사도 적혀 있다. 가느다란 펜으로 도무지 내가 쓴 것 같지 않은 글귀들이다. 라디오를 들으며 받아 적은 글 한 조각을 되뇌어 본다. ‘달이 없어도 괜찮은 밤이 있습니다. 별이 반짝이지 않아도 아쉽지 않은 밤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 보다 더 환한 무엇을 지니고 있으면 달이 없는 밤도 슬프지 않습니다. 하늘에 별이 반짝이지 않아도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해 겨울, 강원도 산골의 함박눈이 쌓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목사님과 남녀 교우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새벽 찬송가를 불렀다. 대문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고나면 감사하다며 수수떡과 엿을 싸준다. 교회에 돌아와 벌벌 떨면서 웅크리고 앉아 나누어 먹던 그 정감은 몸을 녹여주는 불씨였다. 지금은 교회의 새벽종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만약 새벽 송을 부르고 다닌다면 ‘욱’ 하고 성질을 부리거나 수면방해나 소음이라며 고발을 당하지 않을까. 때마침 박근혜대통령 취임식 뉴스에 칠만여 참석자들이 말춤을 추는 진풍경이 시선을 잡는다. 무대 위에는 다른 팀들도 있지만 간호사들이 흰 가운을 입고 흰 캡을 쓰고 싸이와 함께 강남스타일을 부르며 말춤을 추고 있다. 나는 감히 말춤을 추듯 발랄하기보다 환자의 고통을 함께 하며 다소곳한 몸짓이 아니었던가. 요즘 파스텔톤 바지차림의 간호사들을 보면서 시대를 반영한 듯하지만 옛날의 백의천사가 그리운 순간이다.

  또 한 장의 책갈피를 넘기면 한국전쟁 피난살이와 보릿고개를 넘기느라 무-밥과 등겨를 먹으며 천대받던 여성의 슬픔들이 뇌리를 스친다. 눈을 들어 벽을 보니 화려한 세상이 펼쳐진다. 벽에 걸린 사진에는 기타클럽 어머니들이 빨간 연주복을 입고 발표회를 하는데 내 모습은 갈색으로 변해 있다. 잠깐 행복감에 젖어본다. 갈색머리 할머니가 되고서도 전문상담자가 되기 위해 딸과 같은 청년들 틈에서 배움의 열정을 불태웠던 시간들이 아닌가. 손자손녀들 앞에서 공부가 재미있다고 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바비킴의 ‘고래의 꿈’이 인터넷 바다에서 꼬리를 흔든다. 옥빛 바다 어딘가에 있을 사랑을 찾아 하얀 꼬릴 세우고 길 떠나는 큰 고래다. 문득 82년 남편과 함께 첫 미국 여행을 하면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고래 쇼를 본 장면이 떠오른다. 고래가 어떻게 공놀이를 하는지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 두고 온 아들과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울산은 거대한 고래도시다. 울산 KTX역 앞 고래조형물은 ‘회귀와 비상’을 상징하고 고래생태체험관의 해저터널에서는 돌고래 쇼 ‘고래야 놀자’ 를 관람할 수 있다. 첨단 크루즈 고래바다여행선이 관광객을 태우고 고래탐사로 떠다니고 고래공원인 고래문화마을까지 만든다니 이제 외국관광이 부럽지 않다. 가족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으리라. 40여 년 전이다. 여섯 살 된 아들이 장생포 해변에서 해체를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있는 고래 입 속을 뛰어다녔다. 그 아이가 울산암각화박물관에 ‘그림을 그리는 동물...인간’ 주제로 제작한 3D영상물 속에도 고래가 날고 있다.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추억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 삶을 되돌아보며 행복에 젖기도 하고 그리움을 간직하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내 노년의 추억은 자녀들의 몫이 되리라. “어느 날 갑자기 그대는 떠나고 갈색등불 빛만 남아 외로운 찻잔에 싸늘한 찻잔에 희미한 갈색추억” 마지막 구절이 여운을 남기며 가슴을 타고 흐른다.

 

                                  울산수필가협회 제14집 2013. 10. 11.

 

성주향 , 2013-10-11 , 조회 1511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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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1-05 20:39:01   +0 -0

깊어가는 가을 밤에,

감잎차 향처럼  은은하게 우려낸

갈색 추억 잘 읽었습니다 . ^*^

sjh39
Date 2013-11-06 20:03:32   IP *.47.*.143 +0 -0

손미희 후배!

반갑고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