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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틈달
 

                                    미틈달(청보리제7집게재)

                                                         윤언자

 깊숙이 다가온 가을 탓에 바람이 차다. 부쩍 쌀쌀한데다 아침저녁 마음까지도 소연하다. 중년에 기쁨이란 새록새록 만들어 가지 않고는 저절로 생기기 않는가보다. 더러는 벌써 가지만을 남기기에는 이르다 싶은 그 넓은 오동나무도 가지만의 위용을 여봐란 듯이 보인다. 저쪽 늦가을의 들판에는 초록이 가고 갈색 단풍이 바래간다.

 11월은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틈새의 달이다. 음력으로는 동짓달이다. 동지섣달에 김치 곽을 연다. 동치미 한 그릇 떠와서 살얼음 걷어내고 어구적어구적 씹어 먹던 일.

  미틈달은 모든 생물들이 겨울을 새러 들어가는 겨들달 이라고도 한다. 늦가을의 상징인 노란 산국이 된서리 내릴 때 까지도 꿋꿋하게 피어있다. 산국이 있어 스산한 내 마음이 미소를 짓는다.

 가을걷이를 얼추 해놓고 김장을 담그던 우리 집에서는 바깥마당 자락의 밤나무 잎들이 개울로 떨어진다. 낙엽위로 흐르는 개울물은 낭만적인 시낭송을 하는 것 같다. 그때는 솔바람이 불기도 한다. 논밭에는 맨 땅의 황토색 들녘이 황량하다. 소슬바람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서며 와서 따뜻한 온돌방이 꽤나 그리워지기도 했지 않았던가.

 요즈음 11월에는 빼빼로 데이가 있어 아이들 몸은 살찐다. 내 영혼에 편안함을 느끼면서 행복을 노래하면 내 마음도 살이 찌겠지.

 더구나 아침잠에서 깨면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이 허전하다. 허한 심정을 달래려고 나에게 자성예언을 한다. “오늘은 좋은 날, 나는 기쁘게 살련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를 몇 마디 뇌까린다. 새벽부터 큰소리로 외친다면 누군가는 미친 짓이 아닐까 하겠지. 그 시간에 작은 목소리로 아침 선물을 내가 나에게 준다.

 12월보다도 11월에는 지나간 달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생각할 시간이 있어 좋다. 지나간 10개월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왔나 연 초에 생각하고 마음먹었던 것들을 이루고 살았나 등으로 나에게 물어본다. 남은 2개월이 올해내내 살아왔던 시간들 보다 더욱 의미가 있는 삶이되기를 스스로 다짐한다.

 나는 그 전의 열 달을 그럭저럭 살아왔더라도 허둥대지 않으련다. 내면의 나에게 다독이며 차분하게 이야기 나눈다. 진부한 것은 멀리하고 은행나무 낙엽이 드리워진 뜨락에서 가을의 오케스트라에 귀 기울인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가을날에 어머니는 고추 멍석이나 나락멍석을 내 널었다. 거지반 10시가 넘어야 붉은 해가 마당에 내려온다. 채마를 팔러가려는 어머니는 자못 해가 빨리 마당에 내려오지 않는다고 안절부절못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이불보따리를 이 손 저 손 번갈아 들어가면서 한시간여동안 시내로 내려온다. 동해에 있는 큰오빠 집을 가는 설렘이 힘든 것도 거뜬히 참아낸다. 양 눈썹에는 은빛안개가 내려앉는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계절의 변화가 있기에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맛깔스럽다. 계속 여름만 있는 나라는 한 겨울에 입는 밍크코트를 입고 싶어 하는 멋쟁이들이 실내에서 에어컨을 한껏 틀어놓고 입기도 한다네.

 1월은 해오름달로 새해 아침에 힘 있게 오르는 달, 2월은 시샘 달로 잎샘 추위와 꽃샘추위가 있는 겨울의 끝 달이다. 새로 맞는 봄 3월은 물오름달로 뫼와 들에 물이 오른다. 4월은 잎새달로 물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을 돋우는 달, 5월은 푸른달로 마음이 푸르러 모든 사람들의 달이기도 하다.

 어느덧 보리가 누렇게 팬 6월은 누리달이며 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 차 넘친다. 7월은 견우직녀가 만나는 아름다운 달. 8월은 타오름 달로 하늘에서 해가 땅위에서 가슴이 타는 정열의 달이다.

 그 폭염의 여름이 가고 9월은 열매 달이다. 가슴마다 열매가 조록조록 달린다. 10월이란 하늘 연달로 밝달 뫼에 아침의 나라가 열린 달이다. 미틈달은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11월이다. 그리고 12월은 매듭달로 마음을 가다듬는 한해의 끄트머리 달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가을과 겨울을 읊은 편린들이 난무한다. 가을볕 아래에서는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만 할 것이 아니다. 노년의 내 모습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유하는가? 삶을 음미한다. 

 11월은 외로운 삶을 어떻게 하면 혼자 즐기면서 살아갈까?  지난날이 미치게 그립도록 들추어보고프다. 그런 날들이 많이 있도록 추억 만들기에 게으르지 않으련다. 멀리 논배미를 바라본다. 추수한 볏짚사이로 참새들이 들락날락하며 숨바꼭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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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언자 , 2010-01-05 , 조회 1870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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