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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배우며

 늘 배움의 갈증을 느낀다.

 배우는 마음을 가졌을 때 모든 환경이 배움의 소재가 된다고 한다. 공부를 할수록 부족함을 느끼고 배워야 할 분야는 끝없이 전개된다. 발길 닿는 곳마다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번쩍이는 시대의 변천을 따르기에는 거리가 너무도 멀다. 고희를 눈앞에 두고 늘 배움의 갈증을 느끼면서 살아온 발자국을 헤아려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6.25사변을 만나 피난길에 나섰다. 낙동강 전투지를 떠나야만 했다. 어머니는 미싯가루와 옷 보따리를 들고 나는 어린 여동생을 업고 피난민의 대열에 끼여 정처 없이 걸었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몰랐다. 갖고 나온 양식은 두 달만에 떨어져 밀양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에 들어갔다. 한여름에 집을 떠났는데 수용소에서 추석을 맞이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석음식을 얻으러 마을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릇이 없어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흰 주머니를 들고 따라나가 밥을 얻어왔다.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피난민 생활은 시대가 안겨준 거지 생활이었다. 전쟁 없는 나라에 살고 싶었다. 베트남전쟁 때 언뜻 보여주는 피난민을 보면서 고생길이 연상되어 남다른 애환을 느꼈다. 

 두 달 여의 피난민 생활을 끝내고 복귀하였을 때는 집과 학교가 모두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천막을 치고 생활하며 천막 속에서 공부를 하였다. 졸업은 했지만 시골에서 중학교를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빠가 부산으로 데리고 온 덕분에 중학교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공부하는 것이 취미였다. 3년 우등상을 받기까지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오빠를 잃은 슬픔에 잠겨 진학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 해 눈물로 세월을 보내시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대구로 왔다. 향학열은 소멸되지 않았다. 배움의 길을 찾아 헤매다 여자고등학교 야간에 입학하였다. 낮 시간을 그대로 보낼 수 없어 낮에는 양재학원을 다녔다. 바느질이 재미있었다. 본을 떠서 재단을 하고 미싱으로 옷을 만들었다.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교복을 손수 만들어 입고 다녔다. 솜씨 좋은 어머니를 닮은 것이다.   

 평소 간호사가 되라는 어머니의 노래가 늘 귀에 쟁쟁하여 간호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굳혔다. 간호장교가 되는 길이 내 앞에 펼쳐졌다. 그 당시의 가정 환경과 모든 여건은 국비로 공부하는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특차시험을 치렀다. 합격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기숙사 생활은 또 다른 맛과 의미가 있었다. 빛깔이 다른 친구들이 엉켜 살면서 쌓인 정은 남다르고 형제애 바로 그것이었다. 청운의 뜻을 가슴에 담고 꿈을 키우며 희망을 엮어가던 추억 많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 5년 간은 의무적으로 복무를 해야만 한다. 간호장교 소위로 임관 후 대전, 홍천, 대구 육군병원에서 근무를 하였다. 몸에 베여있는 간호정신인 희생과 봉사 박애정신은 오늘의 전문상담자가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교육의 기회는 놓치지 않는다. 간호관리반 교육이나 특수교육이 있을 때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독도법은 아무 곳에서나 접할 수 없는 특수한 교육이다. 산에서 조별로 지도를 들고 목적지를 찾아 온 산을 헤매고 다닐 때는 야생마가 된다. 친구들과 함께 산천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며 즐거움을 맛본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전방생활을 하였다. 남편이 의무중대장으로 있던 강원도에는 겨울 내내 눈꽃이 피어있다. 늘 두꺼운 얼음이 얼어있어 스케이트를 배우기에 알맞다. 남편이 출근 한 낮시간은 첫아이를 데리고 책을 잃거나 스케이트를 배우러 다닌다. 집 뒤 개울물은 망치로 두들겨도 깨어지지 않을 만큼 두껍게 얼어있다. 돌 지난 아들은 호랑이 할머니 별명을 가진 이웃집 할머니가 돌보아주신다. 아무도 없는 개울에서 혼자 미끄러져 넘어지다 일어서길 거듭하면서 간신히 스케이트 타는 것을 배웠다. 

 남편이 제대를 하고 나면 전문의 수련을 해야한다. 전문의가 될 때까지 나는 경제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조산원 개업을 하기 위해 시어머니께 첫 아이를 맡기고 호주선교사가 운영하는 일신조산교육원에 1년 간의 연수교육에 들어갔다. 동료들이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할 땐 흥미롭고 재미있다. 수업과 실습을 병행한다. 백명의 신생아를 받은 후 레포트를 반드시 제출해야만 수료가 된다. 한 산모의 세 번째 출산을 도울 때는 회음부를 절개하지 않는다. 조산할 때 회음부의 열상이 있으면 기술부족이라며 야단을 많이 맞는다. 엄격한 교육으로 조산원 개업에 자신이 생겼다.

 5년 간의 조산원 개업은 가장 힘든 시기였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막내를 임신하고 무거운 몸이지만 요청이 오면 조산하러 나가야만 하였고 출산 후 3일 만에도 조산을 나갔었다. 정상분만도 있지만 이상분만은 신속히 병원에 의뢰하는 위급한 상황을 겪기도 하고 진통을 겪는 산모 곁에서 함께 고통의 순간을 감래하곤 했다. 

 남편이 외과 전문의로써 울산에서 S의원을 개업을 하였을 때 나는 감독 간호사가 되었다. 남편과 출퇴근을 같이 하면서 열심히 병원 일을 하였다. 수술실에서는 수술집도에 필요한 물품을 재빨리 챙겨주면서 돕기도 하지만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남편의 고충을 읽을 수 있었다.  

 살면서 배움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년이 되면서부터 병원 일을 서서히 벗어났다. 법학을 공부해야 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가정법률상담소 창설의 제안을 받고부터이다. 아는 것이 힘이란 생각이 들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3학년에 편입학 하였다. 쉽게 생각한 것이 오산이다. 공부가 너무도 어렵고 힘이 들었다. 한 번 시작한 일은 필연코 끝을 맺는 성격은 중도에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생사를 헤매는 교통사고를 낸 것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피로에 지쳐 일어났던 사고이다. 졸업학력평가 시험을 칠 땐 목발을 집고 시험장에 들어갔지만 합격의 영광을 얻었다.

 상담현장에서 경험하였던 일들을 학문으로 정립하고 싶었다. 1998년 가정폭력특별법 시행으로 가정폭력 행위자(가해자) 상담을 많이 하였다. 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상담을 하였는데 행위자 상담은 시대의 변천에 따른 새로운 분야이다. 지금은 행위자 상담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2천년. 내 나이 62세 때 울산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막내딸보다 더 어린 학생들 틈에서 함께 공부를 할 때는 나이를 잊어버린다. 중간고사나 기말시험을 칠 땐 그 좋던 기억력이 쇠퇴되어 열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엄청난 과제나 레포트를 컴퓨터로 작성하는 것이 더 더욱 힘들었다. 학생들은 키보드를 안보고 빠르게 치지만 나는 보고 또박또박 치다보면 하얗게 날이 샌다. 힘은 들었지만 완성된 뒤의 성취감은 피로도 잊고 날을 듯한 생기가 돋아나곤 했다.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와 눈부신 햇살을 보듯이 『가정폭력 가해자를 위한 가족상담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출산하였다. 귀염 받는 늦둥이다. 이 늦둥이가 사회적 이슈인 행위자 상담에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급속도로 변하는 시대와 새로운 문화는 배움의 갈증을 끊임없이 느끼게 한다. 배움의 소재가 상상을 초월한다. 배우려는 마음을 갖고 찾으면 보이고 반드시 기회가 온다. 40여 개의 각종 수료증과 자격증들이 파일에 꽃혀있다. 전문상담자로서는 창고에 쌓아 둔 곡식이다.

 “두 사람이 나의 스승이라/착한 사람에게는 그 착함을 배우고/악한 사람에게는 악함을 보고/자기의 잘못된 성품을 찾아/뉘우칠 기회를 삼으니 착하고 악한/사람이 모두 내 스승이다.”라는 공자의 말을 음미한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가슴에는 늘 배움에 대한 열정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 못다 이룬 박사과정의 향학열은 고희를 앞 둔 지금도 불씨로 남아 있다. 


2004. 12. 수필문학 연간대표 수필선집

성주향 , 2005-01-31 , 조회 1702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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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2-02 22:17:15   +0 -0
정말 존경스럽고 열심히 살아오신 삶에 대해서 힘찬 박수를 뜨겁게 보냅니다. 오늘 성교육 직무연수 강의 잘 다녀왔구요. 선배님처럼 정말 열심히 배우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시는 저보다 10년 위인 선생님이랑 이야기 나누며 성주향 선배님 자랑을 했더니 작년 여름방학때 교감연수받을때 강의 나오셨을때 뵜는데 참 존경스럽다고 하셨어요.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끼리 통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음을 느끼는 하루였어요. 건강관리 잘 하시고 계속 열정적인 삶의 모습 보여주세요. 열심히 뒤좇아갈께요.